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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이빨 - 신영복의 '나는 걷고 싶다' 중에서 -

ㄹl브ㄱL 2008. 3. 30. 01:24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231회]






죄수의 이빨


계수님께

치과에 가서 이빨을 뽑으면 뽑은 이빨을 커다란 포르말린 유리병에 넣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모았을까 두어 됫박은 족히 됨직한 그 많은 이빨들 속에 나의 이빨을 넣고 나면 마음 뒤끝이 답답해집니다. 지난번에는 물론 많이 흔들리는 이빨이기도 했지만, 치과에 가지 않고 실로 묶어서 내 손으로 뽑았습니다. 뽑은 이빨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날 운동시간에 15척 담 밖으로 던졌습니다. 일부분의 출소입니다. 어릴 때의 젖니처럼 지붕에 던져서 새가 물고 날아갔다던 이야기보다는 못하지만 시원하기가 포르말린 병에 넣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10년도 더 된 이야깁니다만 그때도 치과에 가지 않고 공장에서 젊은 친구와 둘이서 실로 묶어 뽑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담 곁에 갈 수가 없어서 바깥으로 내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궁리 끝에 마침 우리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던 풍한방직 여공들의 작업복 주머니에 넣어서 제품과 함께 실려 내보낸 일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아무리 종이로 예쁘게(?) 쌌다고 하지만 '죄수의 이빨'에 질겁했을 광경을 생각하면 민망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나는 징역 사는 동안 풍치 때문에 참 많은 이빨을 뽑았습니다. 더러는 치과의 그 유리병 속에 넣기도 하고, 더러는 교도소의 땅에 묻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담밖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비단 이빨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곧 우리들의 심신의 일부분을 여기, 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 묻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무심한 한마디 말에서부터 피땀어린 인생의 한 토막에 이르기까지 혹은 친구들의 마음 속에, 혹은 한 뙈기의 전답(田畓) 속에, 혹은 타락한 도시의 골목에, 혹은 역사의 너른 광장에……, 저마다 묻으며 살아가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경우는 나의 많은 부분을 교도소에 묻은 셈이 됩니다. 이것은 흡사 치과의 포르말린 병 속에 이빨을 담은 것처럼 답답한 것이기도 합니다.

교도소가 닫힌 공간이라면, 그래서 포르말린 병처럼 멎은 공간이라면 그러한 느낌도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돌이켜보면 교도소는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이 아닐 뿐 아니라 도리어 우리 사회, 우리 시대와 가장 끈끈하게 맺어져 있는, 그것의 어떤 복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웠을 경우 그 꼭지점이 땅에 닿는 자리, 즉 피라미드의 전 중압(全重壓)이 한 점을 찌르는 바로 그 지점에 교도소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도소는 사회의 모순 구조와 직결된 공간임으로 해서 전 사회를 향하여 활짝 열려 있는 공간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에 묻은 나의 20여 년의 세월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포르말린 병의 그 답답함이 연상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징역살이라 하여 한시도 끊임없이 내내 자신을 팽팽하게 켕겨놓을 수도 없지만 어느새 느슨해져버린 의식과 비어버린 가슴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이것은 깨어 있지 못한 하루하루의 누적이 만들어놓은 공동(空洞)입니다. 피라미드의 전 중압이 걸려 있는 자리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공동화(空洞化) ― 역시 교도소가 만만치 않음을 실감케 합니다. 묻는다는 것이 파종(播種)임을 확신치 못하고, 나눈다는 것이 팽창임을 깨닫지 못하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나의 소시민적 잔재가 치통보다 더 통렬한 아픔이 되어 나를 찌릅니다.

계수님께 편지 쓸 때면 으레 약간의 망설임이 없지 않습니다. 징역 이야기만 가득한 나의 편지가 계수님의 생활에 무엇이 되어 나타나는지, 공연히 계수님의 방 창유리나 깨뜨려 찬바람 술렁이게 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수님의 편지와 그 편지에 실려오는 계수님의 면모와 생활자세는 이러한 나의 망설임이나 걱정을 시원하게 없애줍니다.

1987. 5. 28.

- 신영복의 '나는 걷고 싶다' 중에서 -

 

  J'Ai Peur / Nam Tack 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