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Quasthoff
Schubert: Du bist die ruh'
Mussorgsky: Floh-lied 벼룩의 노래
Mahler: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Thomas Quasthoff, Bass-Baritone 1959 ~
1959년 11월 9일 소위 'Thalidomide baby'의 기형아로 태어났다. 팔이라 부를 수도 없을 짧은 팔, 키 약 5 피트 (152cm)의 작은 체구. 그는 "노래를 할 수 있는 장애자(handicapped person who can sing)"가 아닌 "신체 장애의 예술가(artist with physical disability)"로 소개된다. Thalidomide baby: 'Thalidomide'라는 약물의 영향으로 인한 태생적인 기형아. 1962년 까지 이 약은 임신부의 임신 구토증 치료를 위해 널리 처방 되었다. 1988년 독일 Munich의 ARD International Music Prize를 수상하고 처음엔 혹시 나의 장애를 불쌍히 여겨서일까 의심 하였는데 난 그때 Chief Jury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당신의 장애 때문에 이 competition을 이긴 것이 아님을 절대적으로 확신해도 좋다." "만약 당신이 이 상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면 이것은 장래 당신에게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는 Claudio Abbado, Daniel Barenboim, Simon Rattle 등의 지휘자와 전세계에서 연주회와 오페라 공연을 하며 이제 더 이상 그의 장애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장애 때문에 사람들이 공연에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Wigmore Hall등에 오는 이들은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곡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이 어떤 호기심 때문에 오지는 않는다 생각한다"
"나는 내 손으로 제스쳐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그런 좋은 처지에 있다. 오직 나의 목소리 만이 유일한 표현의 도구이다. 따라서 관중들로 하여금 거기에 집중토록 한다: 만약 당신이 움직이지 않고 얼굴과 목소리만 보인다면 관중들은 제스쳐를 쓰는 경우와 비교해 더욱 집중해야 할테고 그것은 내게 차라리 더 좋은 기회일 것이다." 13살 때부터 취미로 singing lesson을 받고 음악대학에 가길 원했으나 기악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 당하다. "그때는 나의 책임이 아닌 문제로 내가 처벌을 받는다 느꼈다. 돌아보면 개인적인 공부에 의지해야 하였기에 차라리 음악에 더 깊숙히 빠져들 수 있었다 생각한다. 매일 음성 훈련을 1시간 반 가량 받았는데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된일이었다."
음악 training 중 동시에 그는 3년간 법률 공부를 하였고 은행에서 한 6년간을 하루 14시간 씩 고되게 일하다 병을 얻고 은행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장애인으로 취급되기를 거절한다. "내게 신체 장애는 사실일 뿐 문제가 아니다. 난 장애인으로써 살아가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일들을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다루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비장애인의 생활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도대체 진정 누가 장애인이란 말인가? 난 모두에게서 그것을 볼 수 있는 행운의 처지에 있는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늘 행복치 못하다면, 돈이나 성공에만 억매어 있다면, 내 생각에, 그것 또한 장애이다." Quasthoff는 전세계적인 연주및 Deutsche Grammophon의 전속계약에 의한 녹음등 바쁜 schedule 중에도 독일 Detmold의 music academy 교수로 후진 양성에도 정열을 쏟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