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OST..

프랑스 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

ㄹl브ㄱL 2009. 8. 14. 22:30
'La Marseillaise'와 함께 하는 'Casablanca'
과연 우리가 이제껏 치부해 온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릇 우리가 줄곧 인식해 온 '사랑'이란 기실, 사랑이 아니라 한낱 이기적인 소유욕과 편집(偏執)의 발로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그 '사랑하는 이'조차 과감히 떠나보낼 수 있는 희생적 관용과 체념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가장 위대한 사랑의 전형을 보여준 걸작으로 꼽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La Marseillaise -Mireille Mathieu
La Marseillaise - Milva
1943년 처음 개봉된 이후, 지금껏 수많은 극장에서 리바이벌되었고, 수없이 많은 TV에서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빈번히 방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뭇사람들을 가없는 감동의 세계로 몰아넣고 끊임없이 열광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카사블랑카'의 인기는 왜 아직도 식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카사블랑카'는, 보면 볼수록 더욱 깊게 빠져들 수 밖에는 없는 것일까?"
** "O.K. Rick"이라는 사인(sign) 장면과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지닌 놀라운 흡인력.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레지스탕스의 영웅인 빅터 라즐로보다는, 정치적 이념에 휘말리지 않고 철저한 중립을 지켜 나가는 자유주의자 릭(Rick)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는 물론, 영화 자체의 모든 구조와 시선이 주인공인 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또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실 거기에는 그러한 이유보다도, 험프리 보가트라는 이 독보적인 명우(名優)가 지닌 '특유의 빛나는 카리스마적 캐릭터(character)' 즉, 어떠한 장면에서든 결코 이에 구애되지 않고 관객을 단번에 흡인해 버리고야 마는 그만의 독특한 마력(魔力)이 기여한 바가 훨씬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명장 마이클 커티스는, 그러한 '보기(Bogie : 험프리 보가트의 애칭)'의 강렬한 흡인력을, 영화초반부터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유도해 내고 있다. 바로, 릭(Rick)이 힘찬 필치(筆致)로 "O.K. Rick"이라고 사인하는 모습의 '클로즈 업(Close Up)' 장면이 그것이다. 이 순간부터 관객은, 보가트의 시선으로, 보가트와 거의 완전히 동화(同化)된 상태로 영화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 AFI 선정,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에 '시민 케인' 다음 순위로 랭크(rank)되다.
1998년 미국 영화 협회(AFI)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들로서 '시민 케인(Citizen Kane)' 다음으로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꼽았다. 그러나 만일 AFI의 심사위원들이 아닌, 일반 영화 애호가들을 상대로 투표를 실시했다고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그랬을 경우, 판도는 아마도 그와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났을 공산이 매우 높다고 나는 본다. 왜냐하면, 물론 '시민 케인'도, 천재적인 영화작가 오손 웰즈의 탁월한 창의력이 빛나는 위대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 케인'은, '카사블랑카'가 지니고 있는, 한 마디로는 도저히 형언키 힘든 독보적인 '컬트적 매력', 즉, 아무리 봐도 결코 식상하게 만들지 않고, 볼 때마다 늘 새로운 감동의 세계로 인도하는 고유의 미덕을 결코 능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1988년 미국 상원(上院)은, 귀중한 문화자산인 명작 영화필름들의 영구적 보존을 위해,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1000편 중에서 최우선적으로 25편의 보존처리 작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카사블랑카'는 '0 순위'로 채택되었다. 우리에게는 빙 크로스비와 로즈마리 클루니가 주연한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로 잘 알려져 있는 헝가리 출신의 명장 마이클 커티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단 하나의 독창적인 쇼트(shot)도 구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를 마스터한 완숙한 감독답게, 등장인물들이 각기 지닌 다양한 캐릭터들의 특징과 대사의 묘미를 십분 살려 내어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그 이후, 이 작품의 구조나 캐릭터는 다른 영화에 그대로 차용되고 있다.
La Marseillaise를 선창(先唱)하는 빅터 라즐로(폴 헨리드 粉)
** '라 마르세예즈(La Maseillaise)'와 '카사블랑카(Casablanca)'.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담고 있는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seillaise). 2차대전 당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자유 프랑스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미국인들도 다 함께 기립자세로 이 노래를 제창(齊)했다. 이는, 영화음악이 가질 수 있는 서사시적 감정(Epic Feeling)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유명하다. 릭에게 사랑을 거절당하자,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잠시 독일군과 놀아났던 프랑스 여인 이본느가, 눈물을 흘리며 이 곡을 따라부르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브래틀 극장에서 카사블랑카를 본 하바드 대학생들도 이 장면에서는 모두가 일어서서 다 함께 이 노래를 따라불렀다고 한다. 바로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가, 오늘 날 최고의 '컬트 무비(Cult Movie)' 중 하나로까지 공인받게 된 주된 요인 중의 하나이다.







** 명대사가 넘치는 영화, 카사블랑카.
"We'll always have Paris !"(우리에겐 언제나 파리의 추억이 있잖아!) ... '남자가 보여줄 수 있는 관용'의 미학적 극치를 보여준 불멸의 걸작 ' 카사블랑카 '에서, 사랑했던 여인 일자(잉그리드 버그만)를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 떠나보내던 릭 블레인(험프리 보가트) 이 남긴 말이다. '카사블랑카'가 우리로 하여금, 보면 볼수록 빠져들 수 밖에 없게 하는 신비로운 영화인 이유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영화의 곳곳에 깔려 있는 주옥과도 같은 명대사들의 파노라마에 있다. "오늘 밤에 당신을 만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일자(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릭이 던지는 대사, "I never make plans that far ahead."(그렇게 먼 미래는 알 수 없어.), 포성이 울리던 파리에서 릭이 일자에게 와인으로 건배를 제의하며 하던 말인, "Here's looking at you kid!"(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그리고 라스트 신에서 루이(클로드 레인즈)에게 릭이 던진 말 "I think this is the beginn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역시 압권이다. 이 세상 그 어떤 詩 못지 않은 ...

** '위대한 로맨티시즘의 전설'로 영원히 세인들의 가슴 속에 남게 될 영화, 카사블랑카.

겉으로는 모든 일에 있어 엄격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 속 마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인정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에게는 언제나 관용의 미덕을 잃지 않았던 릭 블레인(Rick Blaine) . 그는 일견, 원칙주의자이자, 자신의 일에만 몰입하려 드는 냉정한 남자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에는 전쟁이라는 상황을 묵과하지 않는 자랑스런 사나이의 혼을 보여 주고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는 가치관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참전을 결심한다. 이 영화가 걸작인 이유는 바로, 사나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관용과 용기, 그리고 숭고한 희생의 미학'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판타지로 그려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 피어난 사랑,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열망, 그리고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표출하는 생의 욕망과 페이소스를, 처절하리만큼 아름답고 격조 높은 로맨티시즘으로 승화시켜 담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영화처럼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숭고함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 영화에서 레지스탕스의 리더로 등장하는 빅터 라즐로(폴 헨리드)가 선창(先唱)을 하자, 눈물을 흘리며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따라 부르던 프랑스인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남자가 추구하는 모든 '위대한 로맨티시즘'에는 반드시 '사나이다움(manliness)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든 '위대한 로맨티시즘'은 때로, 과감한 결단을 요하는 '숭고한 자기희생'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정'이 됐든, '이념'이 됐든, 아니면 '사랑'이 됐든...

영원한 베아트리체, 잉그리드 버그만을 추억하며...

Charles Boyer & Ingrid Bergman In Gaslight

*** 이 영화 '가스등(Gaslight)'은 1944년에 MGM(Metro-Goldwyn-Mayer)이 제작한 흑백영화다. 조지 큐커(George Cukor)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의 희곡을 존 발더스턴(John Balderston)과 월터 라이쉬(Walter Reisch)가 각색했다. 주연은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추억의 배우들인 샤를르 보와이에(Charles Boyer),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조셉 코튼(Joseph Cotton)이다.

이 영화는 안개가 짙게 깔린 음습한 도시 런던을 무대로, 막대한 상속재산을 노리고 아내를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한 남자의 탐욕과 이상심리를 추적해 나가는 고전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다. 여주인공 폴라(Ingrid Bergman)의 남편인 그레고리(Charles Boyer)는 기실 그녀의 숙모를 죽인 살해범이자 보석도둑에 불과한 자이지만, 처음엔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는 폴라에게로 귀속될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던 비열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숙모를 살해한 이후, 자신이 이미 짜놓은 완전범죄의 시나리오대로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겨 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내인 폴라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유산을 가로채겠다는 사악한 음모의 발로였던 것이다.

'시민 케인(Citizen Kane)'과 '제 3의 사나이(The Third Man)'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조셉 코튼은, 폴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런던 경시청의 경위 브라이언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예의(銳意)로 그 특유의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미지를 무기 삼아, 역설적으로 실질적인 주인공의 캐릭터를 오히려 무색케 하는 강렬한 개성을 발휘함으로써 일급 성격배우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거의 패닉(panic)상태나 다름없는 극도의 불안심리에 매몰되면서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여인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냄으로써, 그녀 자신에게 생애 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30년대 헐리우드를 풍미했던 프랑스 출신의 명우 샤를르 보와이에(Charles Boyer)는 종전의 자신의 젠틀한 고정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해 최초의 악역을 맡았던 셈인데, 그 역시 성격배우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이상성격의 소유자 그레고리의 캐릭터를 무난히 잘 소화해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주로 여성 문제를 주제로 한 멜로 드라마를 즐겨 다루어 왔던 죠지 큐커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알프레드 힛치콕과 같은 스릴러 전문 감독의 일련의 걸작 스릴러에서 나타나는 품격 높은 서스펜스 영화로서의 아우라(aura)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형식상의 결함, 즉 내러티브 상의 특별한 하자가 발견되는 건 아니지만, 극적 반전의 효과가 떨어지는 결정적 단점으로 인해 스릴러 본연의 가치와 흥미요소가 반감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봐야 할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범작 수준에 머물렀을지도 모르는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영화'로 치부돼 온 데에는, 바로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한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여배우의, 뭇 사나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고혹적인 자태와 더불어, '단아한 여인의 기품을 오롯이 유지해 나가면서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게 은근히 표출해야만 하는 고도로 절제된 공포감'이라는 어려운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녀의 열연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한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이아나(처녀성과 사냥의 수호신)와도 같은 청초함의 화신으로 불리던 그 잉그리드 버그만이, 자신의 실제 인생에 있어서는 매우 정열적이고 도발적인 여인으로 살다 갔다는 점이다. '카사블랑카'의 대성공 이후 '누구를 위하여 鐘은 울리나', '성(聖) 메리의 종(鐘)', '가스등' 등의 연이은 빅히트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그녀는, 1948년 우연히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인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감독한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감독의 심오한 지성과 격조 높은 창의력에 대한 외경의 마음은 곧 그에 대한 흠모의 감정으로 표면화되었고, 이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녀의 정열은 결국 그를 만나기 위해 이역만리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만드는 결정적 단초가 된다. 7년간의 스캔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유부남인 한 이탈리아 감독과 불륜에 빠진 그녀에 대해 세계의 전 언론은 신랄한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50년 2월 로셀리니의 아들을 낳는다. 곧이어 미국의 상원의원 에드윈 존슨은, "버그만은 헐리우드의 타락의 마녀다!"라고 외치며 공개적인 비난을 본격화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 사건은 잉그리드 버그만 스스로가, 나다니엘 호오돈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그녀의 실제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제작, 감독, 주연까지 도맡아 감행함으로써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세기의 스캔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맹렬한 기세로 그녀의 영혼을 옥죄던 '마녀사냥식 헤스터 플린의 여론재판'은 그들 사랑의 진정성을 뒤늦게 깨달은 세인들에 의해 면죄부를 받게 되나, 로셀리니의 이혼을 결코 허용치 않았던 보수적인 이탈리아 정부와 여론 및 사법부의 단호한 입장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결국 결별의 고배를 마시고야 만다.

Ingrid Bergman & Humphrey Bogart In Casablanca

"Was that cannot fire, or is it my heart pounding?(대포 소리인가요? 아니면 제 가슴이 뛰는 소리인가요?)... 이는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자신들 앞에 예정된 이별을 이미 알고 있었던 일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릭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아무 말도 그에게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애절한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명대사다. 하지만 그렇게 처절하리만큼 찬연한 청초함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그 당돌하기까지 한 도발의 용기는 대체 어디서 솟아나온 정열의 분출이었을까? 청초함과 도발적 정열은 결국 극과 극에선 서로 통할 수 밖엔 없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역설의 제시인가? 그렇다면 이는 '러셀의 역설' 이후 가장 흥미로운 역설의 이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를 '버그만의 역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어쨌든 그녀는 세상의 거의 모든 남성들에게 있어 적어도 한번 쯤은 상사병에 버금가는 열병을 치르게 하기에 충분한, 영원한 '베아트리체(Beatrice)'임에는 틀림없다.

July 14th, 2005
Written By Hong Kyoung-Oh .
 
 
아트힐/글쓴이 : 심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