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 [Erik Alfred Leslie Satie, 1866.5.17~1925.7.1]
프랑스의 작곡가. 아카데미즘에 반감을 느끼고 특이한 악풍으로 작곡했다. 작풍의 특징은 본질적으로 어린이와 같은 순수성에 있다. 고금의 모든 음악가 중에서 Erik Satie만큼 시대의 추세와 동 떨어져서 작곡을 계속하고, 한 평생 자신의 창작 태도에 속세의 영향을 허용하지 않았던 작곡가도 드물 것이다.
한 평생 권위에 대한 반발과 학술주의, 직업주의에 대한 멸시를 바탕으로 해서 쓴 그의 작품들은 때로는 비평가들에게 조소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스캔들의 씨앗이 되기도 했지만 가식이 전혀 없는 음을 써 넣는 데에 한 평생을 바친 특이한 작곡가였다.
작곡 기법상으로는 기능적인 제약에 묶이지 않은 화성 진행이나 다조성의 응용 등에 채찍질을 가했지만, 사티의 여러 작품에 있어서의 그것들은 항상 단순한 선율선에 대해서 제2의적인 역활을 다하고, 젊은 시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드뷔시와 같이 풍부한 색채감과 인상주의적인 화성감은 빚어내지 못하였다.
에릭사티의 인생은 불행했다. 그는 참으로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의견을 고집했다.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그는 생활에서는 고립되어 있는 외톨박이였다. 화가이자 모델이었던 현대에도 미술사에 등장하는 페미니스트인 수잔 발라둥과의 짧았지만 결렬했던 3개월간의 동거 생활은 사티의 인생 전체에 그림자가 되고 말았다.
수잔은 어느 밤 사티와의 결렬한 싸움끝에 사티의 아파트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추락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찰과상으로 그치고 말았으나, 그것이 사티와 수잔의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사티는 죽을 때까지 그 누구도 자신의 아파트에 들여 보내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의 아파트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그가 사망한 뒤었다.
에릭사티는 가구음악(가구처럼 있는듯 없는듯 한 음악)의 시초라고도 할 수있는데, 어느파티에서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그의 음악을 경청하자 사티는 "여러분 떠드세요. 이 음악은 집중하면 안됩니다. 마시고 이야기하며 떠드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릭사티는 발레와의 인연도 아주 무관하진 않은데, 장콕도가 대본을 쓰고 의상과 무대디자인에 피카소가 참여했던 parade 라는 작품에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고, 사후지만 프레데릭 에쉬톤도 그의 음악을 가지고 monotones 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비평가로 부터 시대의 미숙아로 불리었던 에릭사티는 후세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현대음악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사티는 57세로 죽었다. 죽을때까지 그는 혼자였으며, 죽은 뒤에 그의 방에 들어간 친구들은 그의 방문 위에 걸려 있는 두 장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사티가 그린 수잔의 초상화(유치한게 못그린)였고, 곁에 걸린 다른 하나는 수잔이 그려 준 사티의 초상화였다.
[작곡의 경과]
"에릭 사티"는 21세부터 몽마르트의 카바레 <흑묘-검은고양이>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면서 세 개의 중요한 피아노 연작인 <사라방드>(1887), <짐노페디>(1888) <그노시엔느>(1890)을 작곡한다.
<3개의 짐노페디>는 1888년 작품으로 초기의 사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전해(1887년)에 쓴 <3개의 사란드>가 샤브리에의 작품 등에도 사용된 미해결 화음의 연속에 의한 어두운 음향을 가진데 비해 <짐노페디>는 단음으로 연주되는 애조 띤 선율선과 그것을 지배하는 섬세하고 선법적인 불협화음만으로 구성되는 획기적인 작풍과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원래 "짐노페디"란 고대 스파르타의 연중 행사의 제전의 하나로, <Gymnopaedie>에서 사티가 만든 말이라고 한다. 연주시간은 전3곡이 약 7분 반 정도이며, 나체의 젊은이들이 합창과 군무로써 춤을 추며 신을 찬양한 것을 말하는데, 사티는 이 고대의 제전의 춤을 3곡으로 된 피아노 모음곡으로 그린 것이다. 처음엔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어 단순한 듯 들리나 절제된 선율의 고대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사티의 전기를 쓴 '템플리에'에 따르면, 이 작품을 쓰기 직전에 사티는 병영 생활에 싫증을 느껴 거기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엄동설한에 한 밤중에 밖에서 가슴을 풀어 헤치고 서서 일부러 기관지염에 걸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이로 인해 요양하는 도중 읽은 플로베에르의 <살람보>에서 악상을 얻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청명함은 그가 좋아하던 화가퓌비스 드 사반의 선적이고 연한 색패를 연상케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티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 '드뷔시'와 오랜 우정을 나누었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드뷔시는 <짐노페디> 두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였으며, 제 2 번은 리처드 존스가 편곡하였다.
제 1번은 느리고 비통하게, 제 2 번 느리고 슬프게, 제 3 번 느리고 장중하게의 형식이다.
평이한 구성과 단순한 형식에 실려 전개되는 순수하고 투명한 음악인 <짐노페디>에는 평생을 고독했던 사티의 삶이 그대로 묻어있다.
[해 설]
제1번 : 느리고 비통하게(Lent et doulereux) 3/4박자.
- 왼손이 낮은 G음, D음을 시이소식으로 반복하는 4마디로 도입한 후 단순한 선율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전30마디로 구성되는 악절이 축어적(逐語的)으로 되풀이 되는 78마디의 소품이지만, 이들을 형성하는 짧은 프레이즈의 길이가 통일되지 않았다는 것과 비기능적인 화성이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불안감을 자아내어 진부함을 피하고 있다.
제2번 : 느리고 슬프게(Lent et triste) 3/4박자
- 이 곡도 울적한 4마디의 G음 - D음 시이소, 페달의 도입구를 가졌고 선율이 단순한 것도 앞의 것과 같으나 악구 사이에 모두 4회가 삽입되는 완전히 표정을 잃은 낮은 G-D의 2마디는 앞을 연결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을 준비하느 것도 아니며 오직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만 있는 것같은 음향을 가진다.
제3번 : 느리고 장중하게(Lent et grave) 3/4박자.
- 또 다시 시이소 페달(이번에는 낮은 A-D)에 의한 도입으로 단순한 선율이 흘러 나오는 곡이며 전부 60마디이다. 화성의 해결감의 결여가 악구의 길이의 불균등함에 부자연감을 주지 않는 이유겠지만, 화성의 전횡으로부터 선율의 해방을 시도하는 작은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 역사적으로도 뜻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