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있다. 여기저기서 무시당할 때 하는 푸념인데 홍어의 '거시기(홍어X)'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는 의미다. 홍어 수컷 꼬리에 돌출돼 있는 '거시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없고 가시까지 붙어있어 잘못 다루면 손만 다친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홍어 수컷을 잡자마자 생식기를 뽑아버렸다. 더욱이 암컷보다 수컷 값이 헐값이어서 일부 상인들은 생식기를 잘라내고 암컷으로 속여 팔기도 했다. 암수는 서로 가시를 박고 짝짓기를 하기 때문에 암컷이 낚시에 걸리면 수컷이 등에 업힌 채 따라 올라온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姦淫) 때문에 죽는다.

▶'물텀벙이'이란 물고기가 있다. 예전엔 입이 크고 흉하게 생겨 그물에 딸려오면 재수 없다고 뱃전 너머로 던져버렸다. 이때 '텀벙' 소리가 난다고해서 '물텀벙이'다. 흐물흐물한 살집 때문에 곰치, 물곰, 물메기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못생겨도 맛은 좋아 해장국으로 인기다. 곰장어는 죽어서도 살아 움직일 정도로 힘이 좋아 스태미나 식으로 인기가 높지만, 서구에서는 사체에 몰려드는 징그러운 모습을 연상해 먹지 않는다. 개불은 앞에 '개' 자로 가렸지만 남자의 거시기를 가리키고 전복과 홍합은 버자이너(vagina)다. 멍게의 본딧말인 '우멍거지'는 포피가 덮여 있는 포경상태의 어른 성기를 가리키는데, 번데기 같은 구멍을 통해 물을 쏘아 대는 습성이 있어 영어 이름도 '바다 물총'이다. 이처럼 물고기의 이름에도 남녀 ‘거시기’를 상징하는 것들이 많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과 백제군의 황산전투를 그린 영화 '황산벌'은 당시 백제·신라 사람들이 전라·경상도 사람들처럼 서로 다른 사투리를 썼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영화다. 그중에서도 백제 진영에서 쓰는 '거시기'나 '머시기' 등은 이 영화에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신라군이 백제의 턱밑까지 쳐들어오자 의자왕은 계백장군을 불러 "아무래도 니가 거시기 혀야겄다"며 출전을 당부한다. 참모들에겐 "우리의 전략적인 거시기는 머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한다"고 말한다. 김유신은 음어(陰語) 같은 '거시기와 머시기'의 뜻을 해석하지 못해 당황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거시기가 거시기고, 머시기가 머시기인줄 다 알아듣는다. 거시기는 남녀의 거시기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쓰임새가 광범위한 인칭대명사다.

▶거시기나 머시기는 편리한 말이다. 적당한 단어가 얼른 생각나지 않을 때, 면전에서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곤란할 내용을 전달할 때 쓸 수 있는 양수겸장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요즘처럼 말이 안 통하는 정치, 말이 안 통하는 세상에 살다보면 여러 말 하기도 귀찮아진다. "아따, 거시기하다. 먹는 것도 거시기하고, 자는 것도 거시기하다. 신문을 봐도 거시기하고, TV를 봐도 영~ 거시기하다. 거시기가 거시기한데, 거시기 해버리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세상은 유쾌해진다. 도처에 '짖는 개'가 얼마나 많은가. 정치판은 지악스럽게 짖어대고, 잡된 무리들은 잡소리로 짖어댄다. 그래도 참아라. 세상에 하찮은 것이란 없다. 못생겨서 두엄더미에나 처박히던 홍어나 물텀벙이가 인간의 해장탕으로 대접받듯 보잘것없는 것이란 없다. 다 쓸모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아, 오늘 거시기 하더라도 머시기 하지 마라. 오늘 거시기 못하면 내일 거시기 하면 되잖은가."

나재필 논설위원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