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i Gavrilov-Bach. French Suit (93분 31초)
지금까지 5분에서 길어야 10분 정도 연주되는 곡들을 소개해 왔는데 90분이 넘는 곡 소개는 처음이고 파격이다. 가브릴로프의 연주를 들으며 이 곡을 중간에서 자르는 건 불가능하고 일종의 만행이라고 판단했다. 가브릴로프 의 이 곡 연주는 내가 아는 한 최상급이며 바흐라는 작곡가의 위대성을 더욱 상승시킨다. <프랑스 조곡> 연주로 글랜 굴드, 호르쪼브스키, 일본인 미쑤코 우치다의 연주를 소개했는데 특성이 각자 있으니 비교우위는 별 의미 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50대로 막 접어든 연주자에게 "바흐와 함께 그대도 위대한 연주가"라는 헌사 를 바치고 싶다. 90여분 동안에 나는 천국을 세번 가량 경험했다.
<프랑스조곡>은 같은 춤곡 계열인 <무반주 첼로모음곡>과 구조가 유사하다. 전체 6곡으로 되어 있으며 바흐의 춤곡계열의 클라비어 곡 중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곡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반 3곡은 단조로, 후반 3곡은 장조 로 되어 있고 그때문인지 후반에 갈수록 절묘한 화음이 빚어내는 흥겨움이 배가된다.
가브릴로프, 나이에 비해 순탄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 그가 체제비판으로 상당기간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은 다소 놀랍다. 전후세대 연주가로는 아주 드문 사례이다. 그는 고르바초프 등장과 함께 그의 배려로 자 유를 얻고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 머물다가 최근 모국으로 귀환했다. 그가 장난끼와 위트가 넘치는 겉 모습과 달리 체제순응형이 아닌 저항의 타입이란 점은 그의 연주에 또 다른 신뢰감을 갖게 해준다. 카잘스와 바렌보임이 그랬듯이. 클라코프의 개스사형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안 지근거리에서 태연하게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던 어떤 인물 보다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연주가를 , 그의 연주를 우리는 더욱 선호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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