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두 앉아서 연주하는데 유독 서서 연주하는 악기군이 있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연주회가 다 끝날 때까지 자세가 변하지 않는다. 더블 베이스란 악기다. 그런데 그렇게 서서 연주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앞줄에 가려 사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모습만 가려진 게 아니고 그들이 울리는 음향도 그 악기군이 기여하는 비중에 비하면 청중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한다.
막심 뱅게로프는 어릴 때 음악회에 가면 오보에 연주가인 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아 자기는 맨 앞에 자리잡은 바이올린을 하게 되었다고 농담 같은 얘길 했는데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출신 더불 베이스 연주자 게리 카(Gary Karr. 1941~)는 현대 더블 베이스 연주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사람일 것이다. 더블 베이스 독주자로 명성을 쌓은 그는 특이하게도 선조들이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게 맞다면 게리 카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뒷줄에서 맨 앞으로, 그것도 무대 중앙으로 용
감하게 진출했다고 볼 수 있다. 더블 베이스가 독주악기인가? 여전히 이런 엉뚱한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우연히 게리 카의 연주를 U tube에서 듣게 된 나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담은 그의 음반을 십수년 동안 소지한 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구색으로 구입한 것 같은데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그 곡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폴랜드 악단과 함께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모새 변주곡>과 더불베이스 협주곡으로 널리 알려진 쿠세비츠키의 협주곡을 들었는데 대체로 무난한 연주지만 크게 만족감을 얻지는 못했다. 비록 게리 카의 연주지만 빠르게 변하는 미세한 음정변화에서 정확도를 떨어뜨리고 미끄럼을 타는 걸 본다. 불안정한 연주자세, 턱없이 길기만한 지판, 독주악기로 더블 베이스가 이런 악조건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장담하진 못하겠다. <모새 변주곡>에서는 그의 연주 보다 사실은 그가 보이는 갖가지 표정들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시종 그의 당당한 체구에 걸맞지 않은 애교 넘친 미소를 청중에게 보내는데 그건 마치 "이렇게 크고 둔탁한 악기를 들고 나와 무엄하게 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도전해서 미안하다" 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라면 난 그의 이야기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별다른 기대감 없이 들어본 그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는 내게 새로운 발견이다. 이 경우는 다른 곡에서 악조건이던 더블베이스의 거인증이 도리어 큰 이점과 미덕으로 작용한 경우라고 생각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스케일이 매우 큰 연주이고 군더더기란 없다. 섣부르게 노래의 유혹에 빠지는 법도 없고 시종 단
순하고 담백한 소리를 유지한다. 3번의 짧은 스타카토로 이어지는 쿠랑트에서 짧은 토막음들은 풍부한 볼륨으로 색다른 맛을 전해준다. 둔탁한 소리인데도 전체적으로 리듬이 죽지 않고 생물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 특히 감탄을 자아내는 그와 그 악기가 자아내는 저음이 일품이다. 3번 알르망드 후반의 종결과 부우레 2가 끝날 때 악기가 토해내는 깊고 깊은 저음에 순간적으로 자기 마음을 의탁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것은 첼로 연주에서 맛보지 못한 경험이고 새로운 발견이다. 내가 이 음악에서 생각하는 위안과 정화(淨化)를 게리 카 연주는 넉넉하게 전해주는 것이다.
게리 카의 깊고도 융숭한 저음을 들으며 문득 이탈리아의 비올라 연주자 파올로 판돌포(Paolo Pandolfo)가 떠올랐다. 상냥하기 그지없고 노래가 풍부한 그의 연주가 지금 듣는 게리 카의 더블베이스 연주와 너무 다른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음악 연주에 능통한 인물이고 2010년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로 연주된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전곡 연주집을 들고 서울에 와서 화제를 모은 바도 있다. 그는 바흐가 첼로가 아닌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해 이 음악을 작곡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사실확인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비올라 다 감바로 연주된 그 음악이 그의 주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바쳐주는가 확인하는 것이다. 파올로 판돌포는 악기를 아주 능숙하게 잘 다루고 있고 감각도 신선해서 많은 지지자들을 이끌어냈다. 첼로연주에 비해 훤씬 섬세하고 다감한 표현력이 그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에서 돋보였다. 그러나 재즈 연주를 연상시키는 지나친 바이블레이션, 자주 짧게 끊어지는 생략주법 등이 곡의 형태마저 바꿔놓았다. 판돌포는 악기만 바꾼 게 아니고 곡 자체를 악기에 맟춰 편곡한 것이다. 첼로의 무거움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에게 이 연주는 신선감을 주겠지만 내가 듣기에 그 연주는 첼로를 대체할 수 있는 연주는 아니었다.
다수의 첼로 연주자들도 이 곡을 통해 깊은 공감을 주는데 실패하고 있다. 아무리 유려한 솜씨를 뽐내도 그런 연주를 나는 혼이 빠진 연주라고 말한다. 그래서 음악과 손이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이 한 곡 연주로 적어도 나에게 게리 카의 관록과 음악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는 자신이 무대 중앙에 자리 잡은 것을
전혀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Bach/Karr Suite No.3 BWV.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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