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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公移山)

ㄹl브ㄱL 2017. 1. 22. 17:53


1.개요
우공이산
(愚公移山). 열자 탕문편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

2.유래

북산에 우공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집 앞에는 태항산과 왕옥산이라는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다른 고장으로 다니기가 무척 불편했다. 그래서 그는 나이가 이미 90세에 가까운데 이 두 산이 가로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자식들과 의논하여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자식들과 함께 산의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에 담아 발해[1]의 은토라는 곳으로 날랐다. 그런데 은토는 워낙 거리가 먼 곳이라 흙을 한번 버리고 오는데 한 해가 걸리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친구 지수(智叟)[2]가 웃으며 만류하자 그는 정색을 하고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지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산신령이 산을 허무는 인간의 노력이 끝없이 계속될까 겁이 나서 옥황상제에게 이 일을 말려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가장 힘이 센 과아씨의 아들을 시켜 두 산을 들어 옮겨(...), 하나는 삭동에 두고 하나는 옹남에 두게 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우공이산'은 꾸준히 노력하면 산과 바다라도 옮길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3. 해설

쉬지 않고 계속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한 말. 물론 산은 옥황상제가 옮겨줬다. 우주가 도와준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라는 주장도 있으나 헛소리에 가깝다. 원문에서도 지수가 우공에게 핀잔을 주다가 오히려 역관광을 당하는 내용이 나오고, 帝感基誠이라 하여 옥황상제[3]가 우공의 정성에 감동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 일화가 우공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리는 아주 잘못된 주장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선시대의 문인들의 기록이나 책에서도 우공이산은 '노력하면 이루지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쓰였지, 무식한 이를 조롱하는 것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


4. 이걸 진짜로 시전한 실제 인물(!)


현대에는 포크레인이나 건축 및 토목기술이 엄청 발달해서 산을 깎아버리는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래도 놀라운 사람들은 여전히 속속 나오고 있다.

  • 다쉬랏 만지(인도) - 아내가 돌산 때문에 길을 돌아가 제 때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게 되자 1960년부터 1982년까지 22년 동안 돌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길을 냈다. 혼자서 한건 아니고 마을사람들이 종종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연장을 교체할 돈을 기부해주었다고 한다. 22년간 쉬지않고 돌산을 깎아내렸으며 포크레인같은 중장비는 돈도 돈이거니와 지형상 거의 안썼다고 한다(!). 2007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비하르 주정부에서 국장을 주관했다. 이 일은 인도에서 만지히: 더 마운틴 맨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고, 2015년 10월 1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 현대 중국에서도 각각 17년(1995~2012), 6년(2001~2007)년간 사비를 들여 터널을 뚫은 개인들이 있다.#
  • 현대 한국군 - 사단장님 말씀 한 마디면 산 하나쯤 옮기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하지만 사실 죽어난다 그것도 중장비 없이 삽든 장정들만으로 한다. 아, 추가로 반드시 행보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거 자랑이 아니다.
  •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 - 엄밀히 말하자면 산을 옮긴게 아니라 황무지에 혼자 힘으로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비옥한 땅으로 바꾼 일이다.
  • 인위쩐 - 위의 주인공처럼 홀로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더더욱 근성인 것이 풀 한 포기 안 나는, 그리고 황사 발원지로 악명높은 고비사막에 숲을 만든 사람이다.
  • 메흐메트 2세오스만 제국군(1453년) -당시 할리치(Haliç =금각만, Golden Horn)[4]에 쳐둔 동로마 제국쇠사슬[5]에 의해 오스만 해군이 방해를 받고 있었으나, 메흐메트 2세는 아예 갤리선을 육지로 끌어와서 을 넘어 테오도시우스 성벽콘스탄티노플 시내에 포격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 정ㅋ벅ㅋ. 동로마 제국은 이로써 멸망했다. 참고로 이들이 배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당시 제노바 자치령이었던 갈라타(지금의 베이오울루 구)과 교섭해 그 지역에서의 군사활동을 묵인하기로 약속을 받아내고 자아노스 파샤(Zağanos Paşa)의 지휘로 오늘날의 베식타쉬(Beşiktaş)에서부터 당시의 갈라타 성곽을 돌아서 할리치까지 나무를 베어 길을 놓고 그 위를 올리브유를 잔뜩 뿌려 매끄럽게 만들어 놓은 다음 무식하게 밧줄로 배를 끌어 놓는 방법이었다. 직접 돌아보면 알겠지만 베식타쉬에서 탁심광장을 돌아 오늘날의 아타튀르크 다리 일대로 가는 길로 거의 2-4km에 달하는 거리에 가장 높은 언덕 높이가 해발 150m 이다. 이 길을 이틀동안 병사들이 밧줄로 배를 끌어 총 72척을 옮겼다고 한다(...)
  • 네덜란드 - 서양판 우공이산. 1987년 5월 12일, 중국덩샤오핑이 중국을 방문한 네덜란드루드 루버스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말하기를 "네덜란드바다를 메워 만든 땅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 위대한 일을 가능하게 한 네덜란드 국민의 강인한 정신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중국 속담에 '우공이산'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꾸준히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말로 우리 중화 민족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국민이야말로 이 우공이산의 표본이 아닌가 합니다."라며 직접 추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