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무엇보다 알프스의 화가 세간티니를 만날 수 있다. 생 모리츠의 도르프에는 목가적인 풍경을 그리다가 41세에 요절한 조바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 1858~1899)를 기념하기 위한 세간티니 미술관이 있다.
그곳에 화가 세간티니의 3부작 <생성, 존재, 소멸>이 미완성인 상태로 보존돼 있다. 지난 1999년 새롭게 문을 연 세간티니 박물관은 개관을 기념해 2001년부터 3년 동안 독일의 외르그 트래거(Jorg Traeger) 교수를 비롯해 8명의 미술사 학자들이 세간티니의 작품들을 하나씩 다루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시도했다. 그로 인해 세간티니의 존재를 다시금 유럽 화단에 부각시켰다.
산다는 것 - 덧없이 쓸쓸한 세간티니의 삶
화가들이 더러 있다.
이를 테면 당대의 부유했던 화가 루벤스에 비해, 죽었을 때 남긴 것이라곤옷 몇 가지와 낡은 그림 도구뿐이었던 렘브란트,
어릴 적에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보고 평생 죽음과 절망의 그늘 아래서 살다간 뭉크,
마약과 결핵에 찌든 천제화가 모딜리아니,
이상향이라고 생각한 남국에서 가난과 질병 그리고 고독 속에서 죽어간 고갱이 있다.
고흐와 세간티니를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의 길이를 살았지만, 고흐(1853~1890)는자살로 끝낸 말년이 참혹했고,
세간티니는 홀로 버려진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
세간티니 [Giovanni Segantini, 1858.1.15~1899.9.28] 이탈리아의 화가.
스스로 색채분리의 기법을 연구하고, 알프스산중으로 이사하여 산악·농촌·호수에서 펼쳐지는 생활과 풍물을, 아침 저녁으로 광선이 바뀌는 데 따라 자연감정이 넘쳐흐르는 시적 표현의 세계로 묘사하였다. 알프스 특유의 밝은 광선의 효과를 표현하는 데 철저하였으며 점묘풍(點描風)의 터치로 고원의 햇볕을 받은 풍물을 황금빛 찬란한 대기 속에 묘출(描出)하였다.
19세 때 밀라노의 브레라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작품은 낭만파에 속하는 것이었으나 그후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음에도, 알프스고원의 강한 광선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하여
어린시절 고아가 되어 방랑하였으며, 인간애를 갈구하던 중 성모 마리아의 환영(幻影)을 알프스고원의 한 처녀에게서 찾아 그녀와 결혼하였으며, 일생을 알프스의 화가로 시종하였다.
《인생·자연 그리고 죽음》(장크트모리츠 세간티니미술관)은 최후의 3부작으로 ,그 중 《죽음》을 1899년 해발 3,000m의 고지 샤프베르크에서 제작 중 완성하지 못한 채 41세로 병사하였다.
광선묘사는 알프스 특유의 밝은 광선의 효과를 표현하는 데 철저하였으며 점묘풍(點描風)의 터치로 고원의 햇볕을 받은 풍물을 황금빛 찬란한 대기 속에 묘출(描出)하였다. 이탈리아의 19세기 화가 중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천재화가로 평가되었으며 대표작으로는
《사랑의 열매》(라이프치히미술관) 《알프스의 정오 또는한낮》 《비정한 어머니들》등이 있다.
Ave Maria a trasbordo
알프스의 정오 mezzo giornosullealpi
Giovanni Segantini 1858 - 1899 Dates: c. 1897 7위를 한 그림이다. 세간티니가 알프스에서 느꼈던 풍경을 담아낸 그림인데, 밝게 빛나는 배경을 위해 점묘와 색채분할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높고도 험한 지형에서 살아남고자, 굽어지고 비틀린 소나무가 인간의 '인내'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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