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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가곡(Franz Schubert 1797~1828)

ㄹl브ㄱL 2009. 7. 18. 01:57

출처 음악칼럼니스트 박동용의 음악노트 | 엔리꼬
원본 http://blog.naver.com/enricody1/120009208729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슈베르트를 흔히들 <가곡의 왕>이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슈만은 그를 <여성적인 베토벤> 
이라고  했다. 이것은 베토벤이 다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는 의미에서는 과연 맞는 말이라
고 할 수 있는데 즉, 풍부한 감정에 대한 아련한 애수, 서민적인 정서가 넘치면서, 인간적
인 침밀감이 깃든 표현력, 그리고 번쩍이는 비극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이 대조적
으로 상통하는 기분을 내포하면서 베토벤보다 22년 뒤늦게 태어나 1년 뒤에 베토벤을 뒤 
쫓아 세상을 떠난 그는 극도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존경하는 선배와 같은 비인에
서 살면서 같은 음식점에서 여러 번 얼굴을 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진심이 담긴 이
야기를 주고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베토벤이 그의 천재성을 알아차렸을 때는 너무 늦어
서 임종의 자리에서 였다고 전해진다.
슈베르트 역시도 천재작곡가 중 너무도 짧은 생애를 살다가 사람으로 겨우 30년이라는 박
명의 생애를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작품의 수는 1,200곡이라는 숫자에 놀
라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중에서도 가곡만 무려 650곡이나 된다는 것은 가곡에 탁월한 능
력을 타고 낫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가곡은 소위[송][로만스][멜로디]
[샹송]등 여러가지 말로 불려지고 있지만 그 어느 의미로도 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
다 더 깊고 격렬한 감동적인 면까지도 지니고 있다. 그 독창성 있는 가사, 선율, 반주부를 
결합해서, 시와 음악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표현하는 힘은 그의 [리이트 Lied]의 독자적
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이러한 음악성은 부모님으로부터 기인 된다고 볼 수 있으며 어린 시절 교회 성가대
에서 노래하며, 오르가니스트로부터 개인 지도로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변성기가 되자 
이를 그만 두고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교사 노릇을 하면서 작곡
을 계속하여 17세 때 이미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불후의 명작 [물레질 하는 그레첸]을, 
그리고 이듬해에는 역시 괴테의 [마왕]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예법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 했지만 [뎃소]라는 지방에서 교사로 있던 형인 [이그나츠]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도저히 구제 받을 길 없는 불행한 학교용 짐말과도 같은 신세랍니다]
라고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시골에서의 교사 생활이 행복하지만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음악 즉, 작곡에 전념 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과 환경과 여건이 필요
했던 것이다. 그래서 1816년에는 교사직을 그만두고 친구인 쇼오바의 주선으로 비인으
로 나가 낙천적인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생활은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별로 고
통스럽지 않았던 모양이어서 친구들이 그에게 일정한 직업을 갖도록 권유해서 한 두번 
에스테르하지 공의 딸의 음악교사를 맡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점차 유영해지자 호기심을 위주로 하는 많은 전기 작가들은 그가 17
세 때 리히텐탈 교회에서 미사곡의 소프라노부를 노레한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딸 중 한
사람인 칼로리네와 특별한 사이인 것 처럼 결부 시키려 한 흔적도 있지만 추측에 불과 한 
이야기 일  뿐이다.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장례식 때 관 옆에 서서 장송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그 
자신도 죽은 뒤에는 유언에 따라서 베토벤의 무덤 가까이에 매장 되었으며 시인 [그릴팔
쩌]에 의해서 [죽음은 여기에 아름다운 희망을 가진, 풍요로운 보배를 묻노라]라는 비문
의 묘비가 세워졌다.
그의 가곡에 관해서는 이미 기술한바와 같이 600곡이 넘는 곡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
서도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겨울나그네], [백조의 노래]등은 선율의 아
름다움은 물론 시와, 반주와의 조화는 꼽을 수 있으며, 특히 곡을 만들어 시에 붙인 것이 
아닌 시에 몰입하다 
보니 넘치는 선율과 악상을 주체하지 못하여 붙였다는 표현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감이 항상 흘러 넘치는 삶속에서 그는 눈을 뜨고 생각 할 수 있
는 시간에는 작곡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밖의 작품을 들어 보자면 두개의 교향곡
과 [로자문데]의 극음악, 현악 5중주곡, 현악 4중주곡, 피아노3중주곡,대환상곡[방랑자],
[환상곡], [즉흥곡] 그리고 수곡의 합창곡이 유명하다.
슈베르트의 규모가 큰 곡은 슈만이 말한 바와 같이 [천국적인 지루함]이 없지도 않지만 
그에게는 베토벤이 갖고 있던 불요불굴의 투지가 결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차르트 이
외에는 아무도 향유 할 수 없을 만큼 천분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작품
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떠 오르는 악상에 의해 작곡 했을 뿐 수학적인 공식과 작곡법에는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
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가곡 [마왕]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음의 신비로움이나 동화적 세계의 독특한 분위기는 베토벤 이전의 
세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었다.(2003.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