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클래식의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다가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야사 하이페츠, 바이올린의 천재입니다. (<-사진은 '비탈리의 샤콘느'가 수록된 앨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이 말을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보면 '야사 하이페츠'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은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비탈리의 샤콘느라고 하죠. 레코드사의 조금은 선정적이기까지 한 이 광고 문구는 하이페츠를 언제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된 듯합니다.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를 안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데다가 제가 그의 음악에 대해서도, 그가 연주한 곡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까 말이죠. 하지만 그래도 제가 느낀대로 그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지금 제 마음을 가장 사로잡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거든요. 이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바이올린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모 카페에 가입해서 글을 주욱 읽고 있던 도중이었습니다. '바이올린 연습을 할 때 하이페츠 동영상을 보지 마라. 좌절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보고 문득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저 하이페츠라는 사람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어떻길래 그렇다는 것일까요? 하이페츠로 검색하자 많은 영상과 자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그의 바이올린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 major, Op. 35, 1악장 Allegro moderato 였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곡이죠. 또한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판본이 녹음되었고, 저도 그 중의 몇몇 판본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요. Jascha Heifetz plays Tchaikovsky Violin Concerto: 1st mov. 공연 실황은 아니고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지금 저기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하이페츠 본인입니다. 저 화려한 오른손 손놀림과 정확한 바이올린의 음색, 바이올린의 음색이 너무나 매끄럽고 투명하고 깨끗해서 듣는 순간 제가 바이올린을 듣는 것이 맞는지 순간적으로 제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바이올린 소리는 어두운 밤하늘에서 홀로 청명하게 빛나는 별빛과도 같습니다. 어려운 곡임에도 아무렇지도 않고 가볍게 연주하는 솜씨, 현 위에서 가볍게 튕기듯 춤추는 활시위, 정확하게 음을 찾아가며 여유롭게 움직이는 오른손. 몇 번이나 이 동영상을 돌려봤는지 모릅니다. 날카로운 메스가 춤추면서 제 가슴을 베어들어오듯, 순식간에 제 마음은 무너지고 그에게 매료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깔끔하고 절제된 고음부와 오케스트라단을 압도하는 그 연주는 과연 그 명성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죠. 버나스 쇼는 하이페츠의 데뷔무대를 본 이후 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대의 연주를 듣고 나와 나의 아내는 아주 불안해졌다네. 자네가 그 초인적인 완벽한 연주를 계속하여 질투심 많은 신의 노여움을 산다면 그대는 횡액을 입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일세. 그러므로 저녁마다 잠들기 전에 기도를 드리는 대신 무엇인가 좀 서툴게 연주하는 연습을 해두는게 좋을 거야. 인간이란 자네처럼 완전무결하게 연주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 두게." 저 영상을 보고 난 이후 제가 한 일은 자연스럽게 그의 음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차이코프스키의 앨범입니다. Fritz Reiner의 지휘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이죠. 이 앨범에는 또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Op.64 또한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Serenade melancollque와 Serenade for strings (or piano, 4 hands) in C major, Op. 48 Waltz도 실려 있어요. 이 앨범을 들으면서 하이페츠는 바이올린을 통해 울고, 바이올린을 통해 미소짓는 사람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한 장의 음반만을 듣고 판단하기는 섣부르겠지만요) 제가 접해본 그의 동영상들은 모두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깔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머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처럼 감정을 온 몸으로 표현하지도 않고 다만 덤덤하고 꼿꼿하게 서서 활을 놀리는 그 모습은 차가워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음악들은 풍부하고 서정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더없이 따스하기도 하고 또한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흐느끼는 슬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때문에 사게 된 음반이지만 정작 절 더욱 사로잡은 것은 멘델스존 협주곡이었습니다. 날카롭고 절제된, 하지만 화려한 그의 바이올린을 듣노라니 괜시리 눈물이 나와 하늘을 보고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습니다. 이렇게 따스하고 아름다운 곡이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던지요. 어쩌면 하이페츠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면 그 자신이 바이올린이 되어 노래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멘델스존 협주곡의 초반부를 듣노라면, 그리고 그의 샤콘느를 듣노라면 어두운 무대 위에서 홀로 조용히 죽어가는 빈사의 백조가 떠오릅니다. 이 음악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투명한 곡이었던 걸까 새삼 느끼게 되네요. 바이올린을 듣는데 마치 투명한 빛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듣는 듯합니다. 지금껏 영롱하다는 말은 피아노에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바이올린의 소리는 영롱하고 유려합니다. Chaconne In G Minor (Tomaso Antonio Vital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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