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속 전쟁이야기
작곡가가 싫어했던 대작,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
글_ 정영호 소령 | 육군 3사관학교 군악대장
1805년 이후 유럽 전역에서 전쟁을 벌이던 나폴레옹은 영국을 봉쇄시키려던 전략이 성공하지 못하게 되자 눈을 돌려 러시아 원정을 준비하게 된다. 처음에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황제에게 동맹을 요구하며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지만,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러시아가 프랑스의 숙적인 영국과 교류를 재개하자 러시아를 공격하여 다시 조약을 체결하고자 하였다.
1812년 6월 24일, 나폴레옹이 이끄는 60만 대군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는 프랑스군의 이동경로를 예상, 그 지역에 있는 자국민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가옥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초토화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로 인해 프랑스군은 비록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패퇴시켰지만, 행군 7주째에 이르자 10만 명이 과로로 사망하였다. 1812년 9월 7일, 보로디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마침내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그 곳은 텅 비어 있었다. 프랑스군이 모스크바 입성을 눈앞에 두자, 알렉산드르 1세가 미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퇴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몇 시간 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화재가 모스크바를 덮쳤다.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프랑스군이 필사적으로 진화를 했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애써 정복한 모스크바가 하루도 안 되어 거의 잿더미로 변해버리자 병사들이 숙영할 장소는 물론이고 식량도 모자랐다. 게다가 추위는 예년보다 더 혹독했고 곳곳에서 카자흐인들이 갖가지 항전을 벌였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 점령 1개월 만에 퇴각을 결정했지만 결국, 계속되는 혹한과 배고픔에 떨던 프랑스 병사들은 전사한 병사의 옷을 빼앗아 입고 죽은 말을 뜯어먹으며 퇴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마병들을 출동시켜 기습작전을 벌였고, 곳곳에서는 농민 파르티잔(빨치산)까지 들고 일어나 프랑스군을 공격했다. 러시아군은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계속 추격하여 1814년 3월에는 파리까지 점령하였고, 나폴레옹은 강제 퇴위되어 엘바 섬에 유배됨으로써 그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1882년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성당인 ‘그리스도 구세주 성당’의 완공과 함께 ‘러시아 산업예술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당시 음악가로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차이코프스키가 러시아음악협회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의 권유를 받아 작곡한 <1812년 서곡>이 초연됐다. <1812년 서곡>은 당연히 나폴레옹의 군대를 러시아에서 몰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한 곡이었지만, 정작 차이코프스키는 곡의 내용보다 그 곡을 연주할 장소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였다.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박람회 개장 때 연주한다면 아주 평범하거나 시끄러운 음악이라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쓴 편지에서 당시 그가 이 곡의 작곡을 얼마나 꺼려했는지 잘 드러나는데, 결국 마지못해 작곡을 해야 했던 차이코프스키는 불과 10일 만에 <1812년 서곡>의 작업을 끝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말처럼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차라리 시끄러운 편이 나았다고 생각했으므로 교회 종과 대포를 작곡에 사용했는데, 지금 관점으로는 상당히 이색적이고 독특한 오케스트라 편성이었고, 이러한 특이한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웅장함 덕분에 <1812년 서곡>은 더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러시아정교의 찬송가 <신이시여, 당신의 사람들을 구해주소서>를 현악으로 편곡하여 차분한 느낌을 주는 도입부와 초기 오페라 <보예보다>에서 차용한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인상적인 중간 부분만 감상해보아도 그의 음악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시끄럽지만 결코 조잡하지 않은 개선행진곡 <마르셰예즈>는 비록 차이코프스키 자신이 억지로 주목을 끌기위해 의도적으로 대포까지 동원했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웅장함으로 인해 듣는 이에게 깊은 매력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Eugene Ormandy: Tchaikovsky - 1812 Ove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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