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보드

[스크랩] 나의 톨스토이 - 소설가 송영 -

ㄹl브ㄱL 2015. 1. 9. 15:35

나의 톨스토이 송영 -

 

이번에 나는 두 번째 이곳에 왔다. 꼭 십년 전인 1995년 이맘때쯤 나는 모스크바에 왔던 길에 스승에게 첫인사를 드리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었다. 오는 길에 스승의 유택에 꽃을 바치기 위해 투라에서 장미 한 송이를 샀는데 꽃값이 아주 비싸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톨스토이를 스승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의아스런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나는 쉽게 하지 않으며 아주 은밀한 장소에서 가끔 이 말을 한다. 이제 내가 그를 감히 스승으로 부르는 이유를 간략하게 말하겠다.

 대학 일학년 때 나는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노점에서 싸구려 책 한 권을 샀다. 책값이 일달라도 되지 않은 이 책은 출처도 분명하지 않았고 종이 질이나 활자도 엉망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 그 책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참회록>이나 <인생독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나는 강의실 뒷 구석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며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다가 그것으로 안되어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또 옆 친구의 손수건을 빌려 눈물을 닦아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 일이 생생히 기억된다. 나는 그때 글쓰기와 손을 잡는 언약의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 같다. 전쟁, 가난, 폭력으로 죽어간 형제 등 이십세 청년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스런 기억에 허덕이던 나를 그 글은 구해주었다.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인간의 위엄과 고결한 정신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가를 그 글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 글은 마치 활자 하나 하나가 강철로 만든 화살촉이 되어 내 심장에 박히는 것처럼 내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줬다. 기독교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듯 나도 그때 고결한 정신을 담은 글의 힘이 주는 성령을 받은 셈이다. 몇 달 동안 길을 걸을 때나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도 오직 나는 그 글의 성령에 넋을 빼앗겨 그 글만을 되뇌었다. 그의 몇 줄의 글은 마치 뇌성처럼 내 청각을 울렸다.

삶에 대해 진지하고 또 진지한 성찰을 가능케 하는 이 글의 힘이란 어디서 오는가? 그때 이전에 나는 글을 쓴다는 건 다만 재능으로 흥미로운 얘기를 전개하거나 자기 경험담을 멋지게 펼쳐놓는 일로만 생각했지, 그것이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의미를 규명하는 아주 심각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고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것을 그 책은 내게 명백하게 일깨워준 것이다.

당시 아직 경제개발이 시작되기 이전의 한국에서 글쓰기에 투신하는 것은 밥을 굶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 내 희망은 외국어를 잘 공부해서 장차 경제개발시기에 유능한 활동가가 되는 것이었고 가족들의 기대감도 컸었다. 나는 자신이나 가족의 이 기대감을 저버렸다.

-        그렇다. 만약 이런 글을 몇 줄이라도 쓸 수만 있다면 한번 생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한번 세례를 받은 나는 굶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까지 굶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사실 그의 많은 소설작품들 가운데 내가 읽은 것은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로부터 소설 기법이나 스타일을 배운 것이 아니고 백지 위에 글을 쓰는 행위의 엄숙한 의미와 가치를 배운 것이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지 않고 그 글과 유사한, 산문을 흉내내다가 결국 특정한 장르가 필요해서 소설쓰기로 글의 형식을 바꿨다. 그는 분명히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이끈 단 한 사람의 스승이다. 마치 마술사가 최면을 걸어 비록 잠시지만 한 사람의 사고를 바꾸어놓듯이 그는 높은 덕성, 강렬한 호소력으로 나를 이쪽으로 잡아 끌어준 것이다.

 나는 오래 전 무슨 이유로 잠시 감옥생활을 경험한 일이 있는데 그때 옆에는 사형수나 이른바 흉악범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애썼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이런 일은 작가의 본질적 기능은 아니지만 상대가 사기꾼이건 악인이건 그와 벗이 되겠다는 욕구와 충동이 내게 있다. 사람들이 모두 겁내는 그들에게 내가 자연스럽게 다가간 것을 보면 이런 충동을 지식인의 가벼운 허영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나의 이런 기질은 톨스토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 그 죄수들 얘기를 실제로 몇 편 쓰기도 했다. 최근에 나는 오래 전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행적을 뒤지고 그 사람 옆으로 다가갈수록 그의 체온이 느껴지고 호흡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살해자 이전의 인간으로 그의 혼을 껴안아야 하는가, 이 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지금도 이 갈등은 진행중이다. 톨스토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대응할까? 그것을 상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나는 역시 쉽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끊임없이 그가 간섭하고 내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불편하고 귀찮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이번 경우는 좀 특수상황이긴 하지만 작가에겐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드물지 않게 생긴다. 물론 작품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적 감정을 억제해야 하는 것이지만 증오의 대상인 인물의 영혼을 껴안는다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기독교도도 불교도도 아닌 보통 인간인 내가 그에 대한 증오와 연민이 교차하는 갈등에 시달린다는 것은 내 안에 톨스토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가장 고결한 인간정신의 길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위대한 스승에게 이런 자리에서 경의를 표할 수 있게 해준데 대해 감사한다.

                                                                                   2005.9. 송 영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문학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그가 나의 스승이란 말을 했더니 어떤 남학생이 대뜸 당신이 그의 제자를 자처할 수 있을 만큼 과오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라고 눈을 부라리며 질문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한동안 꼼짝도 못했다. 결국 그런 삶을 살지 못해 부끄럽다고 그 학생에게 사과했다. 그뒤부터 더욱 나는 그가 나의 스승이란 말을 자제하게 되었다. 가끔, 아주 가끔 마치 고해성사하듯 은밀하게 나는 그 말을 한다. 그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기를 채찍질하고 일상사의 번민에서 벗어나고 싶은 때다. 그러나 사실 그가 스승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가 보통 사람인가? 그는 가혹하고 고통스런 율법을 내게 언제나 주문하는 것이다.

출처 : 아름다운 지구
글쓴이 : 케인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