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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은은하고 담백한 초여름의 맛, 죽순

ㄹl브ㄱL 2007. 10. 4. 12:27

은은하고 담백한 초여름의 맛, 죽순

 

여름이 들면 대나무밭은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전남 담양은 우리나라에서 대나무가 가장 많은 곳. 해마다 이즈음이면 담양에서는 대숲이 틔워낸 죽순 채취가 한창이다. 단정한 모범생 집단처럼 올곧은 대숲이지만 땅속은 사정이 달라 대나무 뿌리와 줄기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땅속줄기 마디마 디에서 땅 위로 돋아나는 어린순이 바로 ‘죽순’이다.


1 죽림욕하기에 좋은 대나무골 테마공원에는 약수도 대나무를 타고 나온다.
2 껍질이 반질반질한 것으로 골라 캔 죽순을 길이로 이등분하면 수분을 머금은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밤사이 비가 그치고 이른 아침 찾아간 대숲에는 하늘을 가린 댓잎 사이로 깨끗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꼿꼿한 자태로 뻗어 있는 대나무숲에 바람이 부니 ‘차르르르’ 청명한 소리와 함께 은은한 죽향이 퍼진다. 한창 죽순이 올라올 때는 언제 어디서 돋을지 모르는 죽순이 혹시라도 밟힐까 봐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는 대밭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만성리 산1번지, 대밭 주인인 전창우 씨를 따라 대나무 사이를 걷다 보니 여기저기 바닥에 뾰족하게 죽순이 돋아 있다. 아이 손바닥만 한 것부터 어른 키만 한 것까지 길이도 제각각인 이 죽순은 5월 초순에서 6월 중순이 제철이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처럼 죽순은 성장이 무척 빨라 한 시간에 약 2~3cm가 자라 30~50일이면 성장이 끝난다. 이렇게 빨리 자라는 이유는 성장한 대나무에서 볼 수 있는 형질을 죽순이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죽순의 한 켜 한 켜가 땅속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들이면 마치 용수철 늘어나듯 동시에 자라 대나무의 마디가 되는 것이다. 죽순이라고 해서 다 캐는 것은 아니고, 대나무로 웃자라지 못할 작은 순만 캐서 음식 재료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맘때 바람 부는 날을 피해(채취할 때 바람이 들어가면 쉽게 굳는다) 대밭에서 캔 죽순은 은은한 향과 아삭아삭 씹는 맛이 일품이다. 껍질이 반질반질한, 길이가 30cm쯤 되는 죽순을 골라 캔 뒤 배추 포기 가르듯 밑동에 칼을 대고 서걱서걱 길이로 이등분하니 뽀얀 죽순 속살이 드러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대나무의 종류는 70여 종이나 되지만 그중 식용이 가능한 것은 맹종죽(맹죽), 분죽(솜대), 왕죽(왕대)의 어린순이다. 5월 중순에 가장 먼저 나는 것은 맹종죽으로 겉껍질에 갈색 톤의 보릿빛이 돌며 아작아작 씹는 맛이 좋다. 5월 말에서 6월 초순에 나는 것은 분죽인데, 크기가 맹종죽보다 작고 색은 밝으며 맛은 순하고 쫀득해 죽순 중 최고로 친다. 6월 중순에 마지막으로 나는 것은 왕죽으로, 씹는 맛이 떨어진다. 죽순은 캐자마자 되도록 빨리 조리하든지 가공해야 한다. 죽순은 생장 중인 식물이어서 아미노산과 당류의 소비가 진행되어 시간이 흐르면 맛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장 등의 방법으로 손질만 잘해두면 1년 내내 자연의 생생함을 즐길 수 있는 재료이다.

요리사 배은주 씨는 죽순의 매력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죽순을 고급 식재료로 치며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지만 우리는 전남 지방이 아니고서는 다양한 죽순 요리를 찾기 어렵습니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이라면 죽순이 대체 무슨 맛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아린 맛과 소금기가 느껴지고 마디 사이에 하얀 회분이 끼여 있는 통조림 죽순과는 달리 생죽순은 아작아작한 질감에 옅은 대나무 향과 은근한 달큼함이 배어 있는 맛 좋은 식재료입니다.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재료이니만큼 어떤 양념이나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데 되도록이면 식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질감이 대비되는 재료와 함께 사용하는 게 좋지요.



1 하늘을 향해 꼿꼿한 자태로 뻗은 대나무 숲엔 은은한 죽향이 가득하다. 이맘때 대숲은 하루가 다르게 짙은 푸른 물이 든다.
2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유명한 담양-순천 간 24번 국도에는 메타세쿼이아가 장관을 연출한다.

”대나무밭이 많은 담양은 자연스레 죽순 요리가 발달해 죽순회, 죽계탕, 죽순된장찌개, 죽순제육주물럭, 죽순전, 대통밥, 댓잎술, 죽순주 등 다양한 죽순 별미를 맛볼 수 있다. 담양 대부분의 식당에서 취급하는 대통밥은 불린 쌀과 흑미, 대추, 은행, 밤, 잣 등을 대통에 넣고 찐 밥으로 고슬고슬하고 차지며 대나무 향취가 배어 있다. 대나무 통 속의 얇은 반투명 막인 ‘죽황’이 밥이 익는 동안 자연스럽게 배어들어 독특한 향을 내는 것이라서 대통밥을 짓는 대통은 단 한 번만 이용해야 한다. 죽황 성분은 체내의 열과 독을 없애준다고 한다. 이 대통밥은 대접에 덜어 여러 가지 나물과 토하젓을 넣고 비벼 먹어야 제 맛이다. 밥을 덜어낸 대통에는 댓잎차를 부어 마시고, 대통은 집에 가져가서 밥을 한 번 더 해 먹거나 연필꽂이로 이용하면 된다. 또한 커다란 대통에 영계와 쌀, 댓잎 분말, 한약재를 넣고 대나무 수액을 넣어 삶아낸 죽계탕은 대나무가 닭 기름을 빨아들여 살이 졸깃졸깃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담양의 어느 음식점을 가도 대표 메뉴는 단연코 죽순회다. 죽순과 우렁, 오이, 고추, 미나리 등을 초고추장에 무쳐낸 것인데, 초고추장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 싱싱한 햇죽순의 향과 참맛을 가려버린 것이 아쉽다. 생죽순의 은은한 맛과 향을 즐기고 싶다면 강한 양념의 죽순회보다는 들깨 가루를 넣은 심심한 죽순볶음이 제격이다. ‘가야촌’(061-381-7744)은 인터넷과 여행 안내책자에 소개된 유명한 맛집은 아니지만 현지 주민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 대나무통밥정식(1만 원)을 비롯해 죽계탕, 죽순볶음, 죽순회 등 시어머니와 젊은 안주인의 깔끔한 손맛으로 내는 다양한 죽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죽순은 맛도 좋지만 몸에도 좋다. 특유의 씹는 맛은 섬유질 때문인데, 이 섬유질에는 특수 효소가 함유돼 있어 장속의 유익한 균이 잘 자라도록 돕고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하므로 변비 해소나 숙변 제거에 효과적이다. 게다가 칼로리도 낮으니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강력 추천할 만하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려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칼륨이 체내에 있는 여분의 나트륨을 배출시켜 고혈압 환자에게 좋으며 이뇨 작용을 돕기도 한다. 또한 <동의보감>에 따르면 죽순은 맛이 달고 약간 찬 성질이 있기 때문에 번열과 갈증을 해소해주며 몸속의 체액이 순조롭게 순환하도록 해주고 원기 회복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린 죽순에서부터 대나무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대나무 수액인 죽력수는 고로쇠보다 더 효능이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죽순은 고급 식재료로 인기가 높고, 나무와 잎은 죽세공품의 재료로 사용되며, 대나무숯은 참숯에 비해 효능이 네 배나 된다고 한다.초여름 대숲에서 찾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은근한 매력을 지닌 죽순. 촉촉하고 아삭아삭한 생죽순의 맛을 즐기기에는 지금이 가장 좋다. 이상진 씨(061-381-8496, 1kg당 8천 원, 3kg 이상 주문 가능)처럼 죽순을 채취하는 주민에게 전화로 주문하면 삶아서 아린 맛을 없앤 죽순을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 포장해 택배로 부쳐준다. 맛있는 죽순 요리가 식탁 위로 대숲의 청량한 향취를 전해줄 것이다.

* 이태원에서 전복 요리 전문점 ‘해천’(02-790-2464)을 운영하는 채성태 씨는 우리 땅과 바다에서 나는 진귀한 재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집념의 사나이입니다. 한번 만나고 나면 누구라도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될 정도로 천부적인 친화력 또한 매력이지요. 그의 생생한 경험을 지도 삼아 찾아간 산지에서 새로운 요리를 제안하는 이는 바로 셰프이자 영양사인 배은주 씨입니다. 네 살 때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년간의 홍보와 마케팅 경력을 접고 미국 존슨앤웨일즈 대학으로 늦깎이 유학을 떠나 조리학과와 영양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일한 열혈 요리사지요. ‘제철 재료’ 칼럼은 이 두 사람의 찰떡궁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번 호에는 담양 대숲에서 채취한 신선하고 향긋한 죽순을 이용한 한·중·일 스타일의 맛깔스러운 요리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죽순 전복 은행 볶음
해물과 채소를 굴 소스로 볶는 것은 대표적인 광동식 요리법으로 홍콩이나 상하이 등지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다. 재료의 순수의 맛을 최대한 살린 요리로, 사각거리는 맛이 일품인 죽순과 졸깃하게 씹히는 전복 맛이 잘 어우러진다.

재료(4인분) 생죽순 300g, 은행 20개, 전복 4개, 양상추 1/2통, 식용유 2큰술, 저민 마늘 2큰술, 육수 1/2컵, 청주 1큰술, 굴 소스 11/2큰술, 간장·참기름 2작은술씩, 물녹말·소금 약간씩

만들기
1
삶은 죽순은 5cm 길이로 저민다. 은행은 물에 데쳐 속껍질을 벗긴다.
2 전복은 껍질에 숟가락을 거꾸로 넣어 살을 분리하고 내장과 입을 뗀다. 씻어 물기를 뺀 뒤 윗부분에 사선으로 칼집을 얕게 넣는다. 끓는 소금물에 2~3분간 데친다.
3 양상추는 한 잎씩 떼어 씻은 뒤 2~3등분으로 찢는다. 참기름 1작은술을 넣은 소금물에 10초 정도 데쳐 숨이 죽으면 건진다.
4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저민 마늘을 볶아 향을 낸다. 죽순과 전복을 넣어 살짝 볶다가 육수를 붓고 끓어오르면 은행을 넣는다.
5 청주와 굴 소스, 간장으로 간하고 물녹말로 농도를 맞춘다. 불을 끄고 참기름 1큰술을 넣어 섞는다.
6 접시에 ③을 깔고 전복을 돌려 담는다. 가운데에 ⑤를 담고 전복 위에 남은 소스를 뿌린다.

생죽순 이렇게 손질하세요
1 껍질에 윤기가 있고 크기에 비해 무거우며 길이가 30~50cm 정도 되는 것으로 고른다.
2 커다란 솥에 죽순을 껍질째 넣고 쌀뜨물을 넣고 삶는다. 그래야 좋지 않은 수산 성분이 녹아 나오고 죽순의 산화를 억제해 아린 맛이 없어진다.
3 커다란 솥이 없으면 죽순을 다듬어 삶는데, 먼저 밑동의 단단한 부분을 가로로 잘라내고 밑동에 세로로 칼을 넣어 길이로 이등분한다. 양손으로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양옆의 껍질을 몇 장씩 겹쳐 쥔 채 뒤로 당기면 죽순이 손쉽게 분리된다. 찬물에 살짝 씻어낸다.
4 냄비에 죽순이 잠길 만큼 물을 붓고 소금을 약간 넣어 삶거나 쌀뜨물에 삶는데, 죽순을 가로로 2~3등분해 단단한 밑동을 먼저 삶다가 연한 윗부분은 나중에 넣어 20~30분 삶는다. 알맞게 삶아지면 옥수수 삶는 듯한 고소한 냄새가 난다. 너무 삶으면 씹는 맛이 줄어든다.
5 삶은 죽순은 냄비째 뜨거운 물에서 그대로 식혀야 맛이 좋다. 식은 죽순은 바로 사용하거나 비닐 백에 넣어 냉동보관한다.

죽순새우찜
죽순에 소를 넣어 쪄낸 뒤 달걀물을 씌워 지져낸 전통 지방 음식인 죽순만두를 응용한 메인 디시. 죽순과 잘 어울리는 생새우를 이용해 아삭아삭하고 담백한 죽순의 맛이 살아나게 하며 겨자장을 곁들여 맛에 대비를 준다.

재료(4인분) 생죽순 1개(길이 20cm 정도), 생새우살 200g, 달걀흰자 1개 분량, 녹말가루·소금·후춧가루 약간씩
겨자장 연겨자 1큰술, 육수 3큰술, 식초 11/2큰술, 올리고당·다진 마늘 1작은술씩, 소금 약간

만들기
1 죽순은 길이로 이등분해 쌀뜨물이나 소금물에 데친다.
2 ①의 물기를 거두고 죽순 마디 사이에 녹말가루를 뿌린 뒤 여분을 털어낸다.
3 블렌더에 생새우살과 달걀흰자, 소금, 후춧가루를 넣고 곱게 갈아 소를 만든다.
4 죽순의 마디 사이에 소를 채워 넣고 김이 오른 찜기에 새우살의 붉은색이 올라올 때까지 15~20분간 찐다.
5 겨자장을 곁들인다.

죽순초밥과 죽순 맑은 국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 찾았던 간사이 지방 최고의 스시 전문점 주방장이 계절의 별미라며 내온 죽순초밥. 모양은 그지없지 단순했지만 사각사각 씹히던 죽순의 맛과 향은 잊을 수가 없다.

죽순초밥 재료 쌀·물 11/2컵씩, 생죽순 2개(10cm 길이) 초밥초 식초 21/2큰술, 설탕·소금 11/2작은술씩
간장 소스 간장·맛술 3큰술씩, 올리고당 1작은술

만들기
1
쌀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어 건져 30분간 둔다. 분량의 물을 붓고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는다.
2 초밥초 재료를 작은 냄비에 넣어 끓어오르지 않도록 데운다.
3 데친 죽순을 길이로 4~6등분한다.
4 간장 소스 재료를 약한 불에 끓여 반으로 졸인다.
5 넓은 그릇에 밥을 펴 담고 ②를 끼얹어 나무 주걱으로 밥알이 으깨지지 않게 섞는다. 부채질을 해가며 재빨리 식힌다.
6 한입 크기로 초밥을 쥐고 죽순을 얹어 간장 소스를 바른다.

죽순 맑은 국
재료 생죽순 100g, 물 3컵, 다시마 가로 세로 15cm, 가다랑어 포 1/2컵, 데친 미역 30g, 소금·참나물 약간씩

만들기
1
찬물에 다시마를 넣고 물이 끓어오르기 직전에 다시마를 건지고 불을 끈다.
2 ①에 가다랑어 포를 넣어 5분 정도 우려 건진 뒤 소금으로 간한다.
3 죽순은 데쳐 길이로 저며 썬다.
4 국그릇에 죽순과 미역을 담고 ②를 부은 뒤 참나물로 장식한다.

 Natalia - Dominique Bodin

출처 : 상띠
글쓴이 : 상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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