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째 계속되는 추위로 샘이 얼었습니다..
북풍은 양철지붕을 안고 날아갔고
한기는 철없이 싹을 낸 봄풀을 고개 숙이게 합니다.
바람이 잠시 그쳐 툇마루 끝에 머문 햇살에서 노닥이는데
어데서 매화 향이 날아옵니다.
흠짓, 지난 봄 마당가에 심었던 키 작은 홍매에 시선이 갔습니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연한 붉은 빛 꽃봉우리가 맺혀있습니다.
눈 속의 매화 같은 계집이여 칼을 쓰고도
너는 붉은 사랑을 뱉어버리지 않았다.고
춘향을 노래한 노천명 시인의 시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매화 향기 가득한 광야에서 봄을 기다리며
젊은 나이에 옥사했던 시인 이육사님도 생각납니다.
그리고......바람에 날아간 양철 지붕처럼,
밭고랑에서 얼어 죽은 봄풀처럼
향기 없이 시들어버린 제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아아, 어째서 사랑과 자유는 칼과 감옥의 다른 이름일까요.
<저 매화에 물을 주라> 고, 마지막 말을 남기신 퇴계 선생님의 매화시 두 편으로 戊子年 초록의 창을 엽니다..
戊子年 한해는, 이루어 져야 할 것들은 모두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것은 결정코 이루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一樹庭梅雪滿枝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風塵湖海夢差池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玉堂坐對春宵月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鴻雁聲中有所思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黃卷中間對聖賢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虛明一室坐超然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梅窓又見春消息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莫向瑤琴嘆絶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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