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언제 외로우냐? - 7회
송 영
“여자가 훨씬 늙어 보이대요. 밖에서 보면 누가 부부라고 믿겠어요?”
처음 이곳으로 옮겨온 날 계단에서 부부를 만났다는 문 군도 이런 말을 했다.
“러시아는 여자들이 결혼 이후 빨리 늙어 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걸 여러 차례 봤어요.”
밤이 이슥한데 전화가 걸려왔다. 좀처럼 듣지 못하던 문 군 목소리다.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밤이라 비둘기도 오지 않았을 텐데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소. 그런데 이 시간에 어떻게……?”
“논문 작성을 겨우 끝내 교수님께 전하고 교수님 댁에서 방금 나오는 길입니다.”
“그것 잘 되었군. 축하하오.”
여러 차례 지적을 받고 논문을 수정하고 보완하느라고 애를 먹는다는 소리를 그에게서 들었다. 까다로운 교수가 드디어 두 손을 든 모양이다.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도 될까요?”
무슨 일일까?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것일까?
“그럼 뵌 지도 오래 되었으니까 잠깐 들르겠습니다.”
문 군이 무척 서두르는 기색이다. K로부터 드디어 소식이 온 것인가? 그게 아니면 논문이 끝났으니 이제부터 박물관과 미술관과 볼쇼이 극장 안내를 시작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처음 만났을 때 약속이었다.
문 군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십오 분쯤 지나 중간 출입문 쪽에서 종달새 울음소리가 짧게 들렸다. 손님이 온 신호다. 문 군은 방수복을 입었는데 거실로 들어서는 문 군의 옷깃에서 빗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그는 씨름선수처럼 탄탄한 몸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건강체가 아니라면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은데 십 년째 객지 생활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비가 오고 있소?”
“소나기가 잠시 왔다 그쳤어요.”
“밖에 나가지 않으니까 비가 오는 것도 모르겠네.”
“저는 내일 페테르부르그로 떠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그가 말했다.
“서울에서 오신 교수님 두 분을 모시고 갑니다. 모교 은사님들인데 저 말고 안내해 드릴 사람이 없네요. 두 분도 저를 원하시고. 한 분은 금년 정년인데 마지막 러시아 여행을 오신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잠시 가졌던 박물관과 미술관과 볼쇼이 극장에 대한 기대감마저 와르르 무너졌다. 다만 내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하려고 이 늦은 밤에 찾아온 것인가? 문 군이 원망스럽지만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논문 끝내느라고 잔뜩 지쳤을 텐데 쉬지도 못하게 되었군. 당신 지금 무척 피곤해 보여.”
“피아노 치는 아가씨는 자주 연락 오나요?”
내 기분을 헤아린 문 군이 슬쩍 말머리를 돌린다.
“필요하면 내 쪽에서 연락하기로 했는데 너무 염치가 없어서 자주 연락 못해요.”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녀도 선생님께 많이 배운다고 좋아하던데요.”
“그거야 으레 하는 인사치레지.”
“좌우간 K 선생께서 빨리 오셔야 하는데. 그래야 저도 안심이 되지요.”
“K가 올 것 같소? 그는 아주 그쪽에 눌러앉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요?”
“약속을 그런 식으로 흘려버릴 분이 아닙니다. 늦어졌지만 틀림없이 K 선생은 돌아와서 선생님을 콘스탄치노보로 데려가실 겁니다.”
‘콘스탄치노보’―한동안 잊고 있던 그 지역 이름이 문 군의 입을 통해 다시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그 이름은 여전히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지명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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