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gene Ysaye -Mendelssohn Violin Concerto (mov.3)
피아노에 비해 바이올린 연주자의 연주수명은 적어도 십여년은 짧은 것 같다. 이십세기 바이올린의 왕자 칭호를 듣던 유진 이자이(Eugene Esaye~1858-1931) 의 연주를 찾아 듣는데 노년의 연주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음반은 없고 그나마 유튜브에 올려진 걸 듣는데 모노시대의 젊은 날 연주에 곡목도 제한되어 있고 음질도 듣기 거북할 정도다. 찍찍거리는 잡음 속에 겨우 들은 슈베르트 자장가는 그래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색채와 질감이 선연하다.
"당신이 만일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아버지가 매일 몇 시간이고 스케일을 천천히, 공들여 연습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처절한 것이며 우리는 슬픔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자이의 아들이 파블로 카잘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다. 카잘스는 1927년 봄 베토벤 사후 100주년 추모음악회를 바르셀로나에서 개최하면서 당시 70세이던 이자이의 연주를 청했다. "나는 베토벤 협주곡을 14년 동안이나 연주해 본 적 이 없다오." 완곡한 거부를 뜻하는 이자이의 첫마디다. "당신은 할 수 있고 또 해낼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까?" 친구의 부추김에 이자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렇게 약속하고 이자이는 맹연습에 몰두했는데 그것은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이 고통스러울 만큼 처절했던 것이다.
다음은 카잘스의 연주회 후일담이다.- 나는 지휘봉을 들었고 그는 바이올린을 들 었다. 그리고 첫 소리가 나자, 나는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몇 군데 에서 그는 균형을 잃고 시종 긴장하였지만 여러 곳에서 위대한 이자이의 면모를 보였으며 전체적인 효과는 놀라웠다. 과거에 항상 그랬지만 나는 그의 음악에 빠 져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갈채가 있었다. 분장실에서 이자이는 감정 에 복받쳐 내 손에 키스하며 울었다. 그는 소리쳤다. "부활!" 파블로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에서 인용. 이자이는 60 이전에 베토벤 협주곡을 손에서 놓았 다는 이야기이다.
바이올린에서 나의 첫 우상은 김영욱이었다. 그가 초등학교 5년엔가 계동의 옛 휘 문중학 교정에서 가진 연주회에서 들었던 멘델스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는 내가 처음 듣는 곡이었고 그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뒤로 수많은 멘델스죤 협주곡을 들었지만 여전히 그 연주가 내겐 최고의 연주로 남아있다. 그 뒤로 정경 화, 사라 장의 연주가 이어지고 지금은 수많은 재능들이 유럽 무대를 수놓고 있으 나 그때 김영욱 외에 떠올릴만한 다른 이름도 없었다. 중학교정 야외에서 열린 그 연주회 참석을 위해 금호동에서 계동까지 오후 한나절을 걸어서 갔던 기억이 있다. 김영욱이 중학 일학년 때 도미 기념으로 개최된 연주회에도 나는 참석해서 그의 멘 델스죤 협주곡 연주를 들었다. 첫 연주를 듣던 때 내가 대학 초년생이었는데 사실 다른 외국연주가를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 그가 뉴욕 필하모니와 함께 금의환향하던 그 연주회-1978년 7월 중앙일보 주최.세종문화회관-에도 나는 어김없이 참석했다. 그 연주회 카다로그가 지금 내 곁에 있다. 이걸 보면 당시 레너드 번스타인이 동행하기로 되었는데 그 의 부인이 급서하는 바람에 에리히 라인스도르프(Erich Leinsdorf~1912-1993)가 대 체자로 오게 된 내역과 함께 번스타인의 유감 메시지도 얼굴과 함께 나와있다. 이 연주회에서도 김영욱은 마치 고국 펜들에게 "보세요. 나는 이만큼 성장했답니다." 하고 입증이라도 해 보이겠다는 듯 멘델스죤 협주곡을 다시금 연주하고 있다. 그 러나 뉴욕필과 협연한 그 연주 보다 여름밤 학교 마당에서 들었던 초등학생 때의 그 연주가 어찌된 영문인지 내겐 더 빛나는 명 연주로 각인되어있다.
당시 그 연주는 내게 '초등학생 몸 속에 마치 어른이 숨어있다' 고 착각할 만큼 모든 것이 갖춰진 연주였다. 세밀한 부분, 빠른 부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기 교의 정확성은 물론 소리에서는 향기와 기품이 묻어났다. "어린 친구가 어떻게 저 런 연주를!" 그 재능에 대한 선망과 찬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이미 그때 모 든걸 갖추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 이름이 지구촌에 회자될 날이 머지 않을 거라고 예감했다.
레너드 번스타인-나는 천재란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나 김영욱이야말로 천재다. 1964년 유진 오먼디의 필라델피아 교향악단과 협연을 마친 뒤 현지 평가 일부- 기교적으로 완벽한 젊은 거장. 이를 데 없이 감미로운 인토네이션과 가슴을 파고 드는 톤의 절묘한 아름다움.
1970년 찰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디 프레스>지- 왜 이제야 이런 연주가를 데려왔 는가?
김영욱이 밖에서 들은 평가들은 열린 귀만 있을 뿐 음악체험이 턱없이 빈약했던 내가 처음 그의 연주를 듣고 느낀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그는 초등학생 때 모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던 것이다.
연주가로서 현재 김영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귀국 후 음악교육에 봉직 한다는 소식을 몇 해 전 들었는데 그가 무대에 섰다는 얘기는 근래 들은 바가 없 다.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건 내가 처음 그려봤던 그의 모습은 아니다. 삶의 자취 가 온전히 무르녹은 원숙한 연주무대를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어릴 때 연습이 지겨워 몰래 만화가게로 갔다가 형에게 질책받곤 했다는 그의 일화가 떠 오른다. 유진 이자이가 60세도 채 안 되어 베토벤 협주곡을 놓아버린 것과 김영욱 의 침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활을 잡고 무대에서 청중에게 감동을 선물한다는 것은 이자이의 땀과 눈물이 보여주듯 역시 몸과 정신의 일치로만 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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