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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 강의 '나의 東洋 古典 讀法' 제30회]
천지비天地否
천지비괘는 좋지 않은 괘의 예로 듭니다. 지천태괘와는 그 모양이 반대입니다. 지地() 위에 천天()을 올려놓은 모양입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형상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괘를 비괘否卦라 이름 하고 그 뜻을 “막힌 것”으로 풀이합니다. 비색否塞, 즉 소통되지 않고 막혀 있는 상태로 풀이합니다. 천지폐색天地閉塞의 괘입니다.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저 혼자 높고 땅은 하늘과 아무 상관없이 저 혼자 아래로 향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천지가 불교不交하고 만물이 불통不通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천지비괘는 그 요지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효사를 읽지 않겠습니다. 괘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비否는 인人이 아니다. 군자가 올바름을 펴기에는 이롭지 않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
‘비인’匪人이라고 하는 뜻은 천과 지가 서로 불교不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人의 의미에는 글자의 모양처럼 서로 기대고 돕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비괘의 경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비인, 즉 사람이 아니라고 한 것이지요. ‘대왕소래’大往小來의 의미 역시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대는 양이고 소는 음입니다. 이 괘를 해석하는 단彖 역시 지천태괘와 같은 논리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彖曰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則是天地不交 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 而天下无邦也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外君子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비否는 인人이 아니다. 군자가 올바름을 펴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을 잃고 작은 것을 얻을 것이다. 천과 지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만물은 서로 통하지 못한다. 상하의 마음이 서로 화합되지 못한다. 천하에 나라가 없는 형국이다. 내괘內卦가 음陰이고 외괘外卦가 양陽이다. 이것은 내심은 유약하면서 겉으로는 강강剛强함을 가장하는 것이다. 권력의 핵심은 소인들 차지가 되고 군자는 변두리로 밀려난다. 그리하여 소인의 도는 장성하고 군자의 도는 소멸한다.
무방无邦, 즉 나라가 없다는 뜻은 나라를 공동체로 이해할 경우 약육강식의 패권적 질서가 판을 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또는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뜻으로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불교不交, 불통不通이야말로 정의 실현이나 공동체 건설에 결정적인 장애라고 보는 것이지요. 천지비괘의 대상大象은 다음과 같습니다.
象曰 天地不交 否 君子以 儉德辟難 不可榮以祿 천지는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막혀 있다. 군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유덕有德함을 숨김으로써 난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관록官祿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벼슬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
천지비괘는 한마디로 폐색閉塞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식민지 상황은 물론이고 해방 후의 현대사를 통하여 줄곧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지요. 이러한 폐색의 상황에서는 지혜를 숨기고 어리석음(愚)을 가장하여 권이회지卷而懷之하는 것이 뜻 있는 사람들의 처세였습니다. 나아가기(進)보다는 물러나(退) 강호江湖에 묻히는 것이 난세를 살아온 사람들의 처세였습니다. 이러한 처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우직하게 직언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희생당했지요.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초야에 묻히는 것이지요. 인적 자원의 재생산 구조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삼대三代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제도권 전체가 그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들로 채워진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지천태괘와 천지비괘에서 공통적인 것은, 어느 것이나 다 같이 교交와 통通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와 통이 곧 ‘관계’입니다. 이것이 『주역』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란 다른 것을 향하여 열려 있는 상태이며 다른 것과 소통되고 있는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그것이 태泰인 까닭, 그것이 비否인 까닭이 오로지 열려 있는가 그리고 소통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의하여 판단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지천태괘가 가장 좋은 괘이고 반대로 천지비괘는 가장 좋지 않은 괘인 것은 위에서 본 대로입니다. 그러나 태괘와 비괘의 내용을 검토하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즉 태괘의 전반부는 매우 순조롭고 상승적인 반면에 후반부는 쇠락 국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비괘는 전반부가 간난艱難의 국면임에 비하여 후반부가 오히려 순조롭고 상승 국면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태괘의 후반과 비괘의 전반이 같은 성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태괘는 선길후흉先吉後凶임에 비하여 비괘는 선흉후길先凶後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동양적 사고에서는 선흉후길이 선호됩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가 그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태괘가 흉하고 비괘가 길하다는 길흉 도치의 독법도 가능한 것이지요. 『주역』은 이처럼 어떤 괘를 그 괘만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고 또 어떤 괘를 불변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법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존재론적 관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성괘 역시 다른 대성괘와의 관계에 의하여 재해석되는 중첩적 구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신영복의 강의'나의 동양 고전 독법' - 3. 주역의 관계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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