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했다
- 홍익대 농성장에서
지난 주 부터 시작한 매서운 한파는 8일 홍익대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 엄동설한에 건물 맨바닥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수일 째 나고 있다. 이분들은 시장에서 본 듯한 아주머니들, 가판대에서 신문을 살 때 종종 보는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었다. 한 달에 75만 원을 받고 한 끼에 300원 짜리 밥을 지어먹으며 길게는 10여 년 동안 홍익대를 쓸고 닦고 지켜 온 분들이었다.
홍익대 본관 1층을 점거하며 요구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학교 측은 올해에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제의했다고 한다. 용역근로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어도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임금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가 그렇게 부당한 것인가.
어느 사이 똑같은 일을 해도 똑같이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근로의 가치가 차별적으로 매겨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 비정규직이냐 정규직이냐에 따라서, 직접고용이냐 간접고용이냐에 따라서 급여나 기타 조건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부당한 사회로 변했다. 같은 일을 했으면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정의이다.
사실 홍익대 본관 건물을 들어설 때 '어찌 이 분들을 대하나'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내가 비록 야당이지만 지난 정권 10년 동안 여당의 국회의원이었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더 확실히 신경써야 했다. 문제의식이 너무 얕았다. 안이했다. 이런 반성과 후회를 해봐야 지금 이분들에게 따뜻한 기운 한 줌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역시 뼈저리다. 우리 민주당은 부채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 국민께 빚을 갚는 심정으로 다가서자. 무엇보다 '정의'가 압도하는 일자리 환경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 측에 고한다. 학교는 법을 운운하지만, 법 이전에 사람의 '도의'라는 것이 있다. 엄동설한에 근로자들의 생계수단을 냉혹하게 빼앗고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당장 안정적인 고용승계의 보장을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홍익대 정문을 매일 드나드는 만여 명의 학생에게 지성과 더불어 인성을 가르치는 명문사학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2011.1.10.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의원 천정배 (안산 단원 갑)
'프리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페라의 여왕' 비벌리 실즈를 추모하며 (0) | 2011.01.20 |
---|---|
안철수, “소셜과 모바일 열풍 3년동안 우리는 뭘했나” (0) | 2011.01.11 |
'우물 안 개구리'가 외치는 정의는 '부정의'다! (0) | 2011.01.11 |
하버드대학과 홍익대학의 두 정의 이야기 (0) | 2011.01.11 |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0) | 2011.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