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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여왕' 비벌리 실즈를 추모하며

ㄹl브ㄱL 2011. 1. 20. 12:07

'오페라의 여왕' 비벌리 실즈를 추모하며
[유형종의 막전막후]


‘미국 오페라의 여왕’으로 불린 소프라노 비벌리 실즈가 2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실즈는 20세기를 통틀어 장식적 창법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호주의 조운 서덜랜드에 견줄 만한 존재였다.

사실 실즈는 인생 자체가 화제였다.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 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끼를 발휘했지만 부친의 반대에 부딪히자 가출도 불사했던 ‘불량소녀’였고 정규 음악원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최고의 가수가 됐다. 게다가 클리블랜드의 백만장자와 결혼했으니 신데렐라 스토리의 전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때부터 실즈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에게서 장애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실즈는 최전성기를 맞이한 시점에 아이들을 위해 5년이나 무대를 떠나 있었다.

그런 다음 장애인을 위한 모금운동에 헌신하여 전설적인 성과를 거두어냈다. “실패했다고 절망하지 마라. 그건 희망이다.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절망이다”는 명언을 쏟아내며 여성 명사로 부각되기도 했다. 무대에서 은퇴하자 그의 능력에 반한 뉴욕시티오페라,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오페라가 앞 다투어 실즈를 모셔갔으며 이 중 6년간 재직한 링컨센터 회장직은 미국 공연계의 가장 중요한 자리였다.

순수 예술인 출신으로, 더욱이 여성으로는 아무도 누리지 못한 영광이었지만 정작 실즈 자신은 TV쇼에 자주 출연하여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등 ‘위대한 여인’보다 ‘친근한 옛 오페라 스타’라는 가치를 더 중시하곤 했다.

실즈는 올 봄까지도 건강해 보였다. 오페라 공연을 실시간 촬영하여 세계 극장가에 생중계한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프로젝트에 해설자 겸 인터뷰어로 참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까지도 몸에 퍼진 암세포는 전혀 몰랐다고 한다.

지난해 소프라노 안나 모포,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아스트리드 바르나이 그리고 테너 레오폴드가 세상을 떠난 뒤 올해 명가수의 부음이 들려오지 않았는데 실즈가 떠난 지 겨우 3일 후엔 프랑스 출신 대형 소프라노 레진 크레스팽이 타계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실즈는 폐암으로, 프랑스 여자답게 애연가로 알려진 크레스팽은 간암으로 갔다니 죽음 앞에는 논리적 예상이 무의미한 모양이다. 두 소프라노의 명복을 빈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입력시간 : 2007/07/09 17: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