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 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문정희(文貞姬,, 1947~ 전남 보성)
동국대 국문과 학사/석사, 서울여대 문학박사. 동국대 고려대 교수 역임.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인 등단. 진명여고 재학시절에 펴 낸
첫시집 <꽃숨> 이후 많은 시집 및 수필집 발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국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