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언제 외로우냐? - 1회
송 영
비브리오체카 이미나레니나 역. 이 지하철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때쯤 되면 모스크바 지하철 이용법을 완전하게 터득하게 될 거다. 몇 번 들어도 번번이 철자 하나를 빼 먹거나 발음을 틀리게 한다. 역 근처에 시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레닌도서관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인데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역 이름을 다시 기억에 새겨 두곤 했다.
시내 도심부를 횡단하는 깔조라는 이름의 환성선 중심부에 역이 자리 잡고 있어서 낮에는 언제나 플랫폼은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들로 붐빈다. 객차 밖으로 나온 나는 직사각형 기둥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청바지에 검은색 재킷을 입은 아가씨가 맞은 편에서 내게 손짓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 있는 걸 보면 그녀도 방금 도착한 모양이다. 나는 명진을 겨우 두 번째 만나는데 벌써 오래 사귄 친구처럼 낯이 익었다. 백인들 틈새에서 드물게 피부 빛이 같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까. “빨리 오셨네요. 제가 조금 기다릴 줄 알았는데.” “오 분 정도 빨리 나온 거야. 집에서.”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늦은 오후의 나른한 햇빛이 얼굴로 쏟아졌다. “시끄럽긴 해도 속도는 참 빠르군.” “뭐가요?” “지하철이 그렇다는 얘기야.” 후훗 하고 명진이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전 또 누구 피아노 연주가 그렇대는 줄 알았죠. 어제 구한 그 여자 거 들어 보셨어요? 쇼팽 연주했다는 것.” “이딜 비레. 그 여자 터어키 태생인데 괜찮더군. 헛돈 쓴 것 같지는 않아.” 모든 걸 연주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걸 보면 이 아가씨는 피아노 연주에 어지간히 몰두하고 있다. 늘 혼자 다니고 좀처럼 웃을 일이 없는 탓인지 하치않은 일에도 그녀는 헤프게 웃는다. 그 밝은 성품이 내 기분을 가볍게 해 주었다. “저녁 식사를 하실래요? 점심 식사를 하실래요?” 이것이 함께 식사해 주는 것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한 끼 식사를 무난히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임무이다. 문 군이 그렇게 철저하게 부탁을 해놓았을 것이다. 그녀는 잊지 않고 자기 임무부터 이행했다. “그 두 가지 모두. 나는 아직 점심 전이거든.” 시간은 오후 다섯 시를 가리켰다. “문 선생 연락 오지 않았나요?” “응. 그 친구는 내게 전화하는 법을 잊었나 봐.” “그 분은 그런 분이 아니래요. 아마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예요.” “K 말인가?” “네. K 선생님.” “K가 내게 빚이 있는 것도 아냐. 끝내 오지 않아도 하는 수 없는 거지 뭐.” “언젠가 교민들 모임에서 그 분을 한번 뵌 적 있어요. 잠시 나타나서 농담 한 마디 슬쩍 던지고 곧 가셨는데 재미있는 분 같았어요. 아마 잘 될 거라 믿어요.” “뭐가 잘 된다는 거지?” K 얘기만 나오면 나는 공연히 짜증난 말투가 된다. “K 선생님하고 선생님, 두 분의 만남이 말예요. 그 분 다차로 함께 가시면 틀림없이 두 분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 믿어요.” 언제나 한 끼 식사 해결하는 것이 문제다. 조반은 숙소에서 식빵과 커피 한 잔으로 때우는데 그 정도는 숙소 주방에서 스스로 해결이 된다. 문 군이 안내역을 맡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문 군은 이런저런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파트 밖으로 나서면 나는 완전한 벙어리가 된다. 혼자서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메뉴를 시킬 수도 없다. 식당으로 들어가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갖가지 손짓으로 자기가 먹고자 하는 음식을 요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아파트에서 백 미터만 걸어가면 지하에 서민들이 드나드는 조그만 식당이 하나 있다. 내게 아파트를 빌려 주고 방학 기간 동안 서울로 돌아간 학생이 알려 준 곳인데 값도 비싸지 않고 음식 맛도 괜찮은 곳이다. 특히 소스를 곁들인 그 집 연어 스테이크는 맛이 훌륭했다. 그 학생과 처음 한 번 가서 그 음식을 맛봤다. 그러나 그 뒤로는 그 지하 식당으로 한 차례도 내려가지 못했다. 몇 번 시도는 해 봤다. 그 식당 앞길을 오가면서 자기의 용기를 부추기고 입구 앞까지 다가 서 보기도 했으나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 입구로 차마 발길을 옮기지는 못했다. [계속] ※ 본 소설은 송영 선생께서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고한 소설입니다. 문화예술위의 양해를 받아 앞으로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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