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궁채로 장식한 따듯한 토마토국물샐러드. 포만감이 커 한 끼 식사를 대신해도 충분하다.
이슬이 비처럼 내린 아침이면 풀벌레소리에 물기가 흥건히 묻어납니다. 그 많던 새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기척도 없고, 들녘이 떠나갈 듯 풀벌레소리만 요란합니다. 날이 밝기도 전에 맴맴 목청을 돋우던 매미도 기세가 한풀 꺾여서, 절기의 변화는 소리만으로도 실감납니다. 한낮 햇살은 따가워도 아침저녁으로 몸에 닿는 기운은 제법 선선해졌으니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지요.
터질듯 탱탱하게 여문 토마토 붉은 빛깔이 한층 고와 보일 때입니다. 한여름보다 요즘이 더 맛있는 토마토는 일교차가 커지면 보다 깊은 맛이 납니다. 토마토에 단맛이 있긴 하지만 과일이라 생각하면 좀 밋밋하고 먹는 방법도 단순하지요. 채소로 인식하면 볶음, 조림, 탕, 전, 샐러드, 과자 등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다양합니다.
토마토는 열매도 탐스럽지만 노란색 꽃이 앙증맞고, 잎줄기는 슬쩍 스치기만 해도 특유의 향을 진하게 품어냅니다. 풋풋한 향이 좋아서 일부러 다가가 한 번씩 툭툭 건드려보곤 합니다. 토마토는 흔히 지지대를 세워주는데 밭이 여유롭다면 지지대 없이 키워도 됩니다. 바닥에 뉘여 놓으면 줄기가 자라다 휘어져 땅에 닿는 부분에서 뿌리를 내리고, 다시 줄기를 키워가기 때문에 성장기간이 길게 이어져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기간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굵은 토마토나 방울토마토 모두 키우는 방법은 같습니다.
토마토, 가지, 고추 등 가지과 작물은 같은 밭에 연이어 심으면 잘 자라지 않고 열매가 부실해집니다. 연작피해를 방지하려면 자리를 바꿔서 심거나 가을에 월동작물을 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토마토가 잎이 마르는 병을 겪으면 균이 토양에 남기 때문에, 이런 밭은 토마토뿐만 아니라 고추와 가지도 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토마토를 비롯해 딸기나 참외•고구마•야콘 등은 거둔 직후보다 시간이 좀 지났을 때 당도가 높아집니다. 시기를 잘 가늠해서 첫서리 전에 모두 거두고, 약간 덜 익은 열매는 후숙이 되도록 서늘한 곳에 보관합니다. 자연스럽게 성장한 토마토를 서리 직전에 거둬 충분히 후숙하면 잘 익은 홍시처럼 진한 단맛이 납니다.
비만•변비 예방과 치료, 노화와 치매예방, 건강한 피부 유지, 식욕증진, 소화기능 강화, 지방 분해 등 몸을 이롭게 하는 여러 효능이 토마토에 들어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보약이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노지에서 자라 제철에 거둬 먹을 때 맛도 좋고 효능도 높습니다. 노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강력한 항암효과를 지닌 라이코펜 성분의 흡수율을 높이려면 다지거나 으깨어 먹고, 날 것으로 먹기보다는 익혀 먹는 게 좋습니다.
어렸을 때는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서 먹기도 했습니다. 껍질째 얄팍하게 썰어서 설탕에 절여놓으면 토마토즙은 달콤한 쥬스로 변해 건더기보다 국물이 더 맛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마토가 심심하면 설탕을 더 많이 넣곤 했는데, 토마토의 맛과 영양을 살리려면 설탕을 넣지 않아야 합니다. 설탕은 체내에서 분해될 때 토마토 속의 비타민 B를 소모시키기 때문에 그냥 먹기 심심하면 차라리 소금을 약간 곁들여줍니다. 먹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단맛도 살아나고, 소금에 들어 있는 나트륨 성분이 토마토 속의 칼륨과 균형을 이루어 영양흡수가 좋아집니다.
따뜻하게 먹으면 더 맛있는 토마토국물샐러드는 스프처럼 만듭니다. 맵시는 방울토마토가 낫지만 굵은 토마토를 이용해도 되고, 국물을 좀 더 넉넉하게 만들어도 됩니다. 국물의 감칠맛은 은근한 불에서 오래 볶으면 자연 단맛이 진해지는 양파와 아삭한 풋고추로 살립니다.
먼저 토마토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깁니다. 이렇게 하면 껍질째 생으로 먹는 토마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긋나긋해집니다.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다가 육수를 붓고, 다지거나 갈은 토마토, 감자전분 등을 넣어 약간만 걸쭉하게 끓입니다. 향긋하고 아삭한 고추와 오이를 살짝 익혀 방울토마토와 섞으면 건져먹는 토마토도 맛있고, 따뜻한 국물은 속을 풀어주기에도 그만입니다. 이대로도 포만감이 커서 속을 든든하게 하는데, 쫄깃하게 삶아 건진 수제비를 국물에 띄우면 한 끼 밥을 대신해도 충분합니다.
오목한 접시에 하트형의황궁채를 원형으로 깔고, 완성된 국물샐러드를 담으면 붉은색의 토마토와 진녹색의황궁채가 선명한 대비를 이뤄 맵시를 더합니다. 주로 생 채소로 먹는 황궁채는 담담한 맛이지만 따뜻한 토마토국물에 적셔 먹으면 은근한 풍미를 자아냅니다.
토마토는 풋고추와 궁합이 좋아서 토마토달걀볶음은 약간 매운 고추를 넣어도 깔끔합니다. 고추, 양파, 데쳐서 껍질 벗긴 토마토를 기름에 볶고, 달걀을 풀어 뒤적여가며 반쯤 익인 후 먼저 볶은 채소와 섞어 조금만 더 볶으면 맛과 색감, 향이 보기 좋게 어울립니다.
데쳐서 갈은 토마토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아도 달콤하고 향긋한 주스가 됩니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이런 방법으로 갈아서 냉동 보관할 수 있고, 갈은 토마토에 케첩을 약간만 섞어 간을 하면 생 채소 샐러드 소스로 제격입니다. 토마토 영양분은 우유나 두유와 함께 먹어도 흡수가 잘됩니다. 토마토주스에 메주콩이나 검은콩으로 만든 콩물을 섞어 토마토콩물주스를 만들고, 토마토콩물에 방울토마토, 아삭한 오이, 껍질째 먹는 개구리참외를 작게 썰어 동동 띄워 토마토콩물화채를 만들어도 별미입니다. 생선조림이나 김치볶음에 토마토가 적당히 들어가면 한결 맛깔스럽게 변해서 시들거나 약간 무른 토마토도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토마토가 빚어내는 다양한 맛에 반하면 여물기가 무섭게 손이 갑니다. 초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토마토로 건강한 밥상을 준비해보세요.
재료 준비
- 방울토마토 300g
- 양파 1/4개
- 풋고추 3개
- 오이 50g
- 황궁채 8~10장
- 집간장으로 만든 맛간장 1½큰술
- 조청 2/3큰술
- 감자전분 1큰술
- 멸치육수 1컵, 물 약간
- 반반 섞은 참기름•들기름
만드는 방법
↑ 1. 방울토마토는 밑 부분에 열십자로 칼집을 내 끓는 물에 데친다.
↑ 2. 데친 토마토는 찬물에 담가 식혀서 껍질을 벗긴다.
↑ 3. 토마토 절반가량을 믹서에 곱게 갈아준다.
↑ 4. 양파, 풋고추, 오이는 작게 썬다.
↑ 5. 냄비나 조림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달달 볶다가 멸치육수 1컵을 붓고 끓인다.
↑ 6. 국물이 팔팔 끓으면 갈아놓은 토마토를 넣고, 맛간장으로 간을 하고 조청을 넣어 좀 더 끓인다.
↑ 7. 약불로 줄인 후, 감자전분을 물에 풀어서 넣는다.
↑ 8. 국물이 약간 걸쭉해지면 풋고추와 오이를 넣어 살짝만 익힌다.
↑ 9. 오목한 접시에 황궁채를 원형으로 깔아준 다음 8을 붓고 남겨놓은 방울토마토를 올린다.
자운(紫雲)글을 쓴 자운(紫雲)은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하여 무농약•무비료 농법으로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녀 자신이 현대병으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고자 자연에 중심을 둔 태평농법 고방연구원을 찾아가 자급자족의 삶을 시작했던 것. 건강이 회복되면서 직접 가꾼 채소로 자연식 요리를 하는 그녀의 레시피는블로그 상에서 인기만점이다. 최근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jaun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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